끽다(喫茶)

<문학회 수필 > 끽다(喫茶)

한상영 소설가/문학평론가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빅토리아가 있는 밴쿠버 섬 서쪽 해안은 바로 태평양이다. 내가 찾아가는 그 집은 바로 태평양의 입구인 남쪽 해안에 있다. 8월 한 여름,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세찬 바람은 파도를 끌고와 용트림하듯 엄청난 힘으로 해안을 친다. 해안에 있는 나무와 바위들이 아우성을 친다. 얼굴을 할퀴는 바람 때문에 나는 진저리를 친다. 하늘 한 쪽 둥근 해 조차 빛을 잃고 비켜 선다. 태평(太平)이라는 이름대로라면 잔잔해야 할 바다가 왜 이리 사나울까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 섬 태평양 쪽 해안 Tofino에 이름난 Wind Surfing장이 있는 이유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계단을 올라 안내된 방문을 여니 정면 전면 창을 통해 태평양을 휩쓸고 온 거친 파도가 문 앞에서 요동을 친다. 한 순간 둥그런 지구 표면에서 넘실대는 광대한 태평양이 힘차게 가슴으로 밀려 들어 온다. 숨을 크게 들여 마신 나는 아! 입 속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창문 쪽으로 다가 간다.

“이 쪽으로 앉으시죠”

의식을 깨는 소리에 순간 창에 장막을 내리운 듯 밖의 풍경이 닫히며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흠찟 주인이 서 있는 쪽을 본다.

방 왼쪽 벽 상단에 굵은 붓글씨로 음각된 慈輝軒(자휘헌)이란 커다란 현판이 주위를 압도 하듯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아래 갓 켜낸 나무판으로 짠 선반 몇조가 나란히 벽면을 꽉 채우고 있고 그 위에 올망졸망 갓 구워낸 듯한 앙징맞은 다실용 도기들이 빼곡하지만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 있다. 간장종지 같이 작은 찻잔들, 다양한 형태의 손잡이 달린 다관들, 수반과 항아리들이 숨쉴 사이도 없이 우로 정열, 좌로 정열하고 있다.

주인과 객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부분을 가로 길게 통으로 자른 두꺼운 탁자를 마주하고 앉는다. 주인은 차를 준비하기 위해 전기 주전자로 물을 끓이고 객은 온 방안을 장식하고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휘 둘러 본다. 한 쪽 구석 창호 문짝 장식아래 다소곳한 백자 찻잔들과 키 높은 청자 한 구, 이어서 인공 폭포, 긴 토막의 대나무 통들, 수레바퀴 한짝, 장고와 북과 징, 화분 같이 생긴 숯에 심겨진 제주 풍란을 위시한 동양란 몇 분(盆), 문 옆 벽아래 많은 찻잔들이 나열된 장식 탁자 밑을 꽉 채우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차 박스들,니스 칠이 잘된 나무토막 위에 찻잔과 다관, 옛날 어느 시골 집에 있었을 쇠고리 손잡이 달린 창호 문틀과 창호 창틀, 거기에 걸린 전통 바가지, 기왓장, 큰 방의 한 쪽을 꽉 채운 그 모든 것들이 마치 공방에서 제작되어 바로 옮겨 놓은 것처럼 말짱하다.

주인이 한 손아귀에 들 정도의 작은 찻잔을 앞에 놓는다. 객은 다시 맞은 편 벽 상단에 매달려 있는 자휘헌(慈輝軒)을 올려다 본다.

“아! ‘자휘’는 제 아호(雅號)입니다.”

헌(軒)의 의미를 되 새김질을 하고 있는 내게 내 시야를 쫒아온 그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자(慈)와 휘(輝)가 같이 있어서 그런지 좀 낯설군요.”

“휘(輝)는 잘 안 쓰는 글자라 그럴 겁니다. 빛날 휘(輝), 참 좋지 않습니까? 나는 그 글자가 마음에 들어 지금껏 간직하고 있지요”

“그러시군요. 왠지 자(慈)라는 글자 뒤에는 슬플 비(悲)같은 글자가 있어야 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주인이 다반에서 우린 차를 찻잔에 따른다. 객은 차가 식기를 기다려 한 모금의 차를 홀짝 마시고 빈 찻잔을 내려 놓는다. 주인이 다시 찻잔에 차를 채운다. 다시 홀짝 마시면 잔을 채우고. 홀짝홀짝, 그렇게 마셔도 뭔가 허기를 느낀다.

“이 차는 보이차입니다. 중국 윈난성 차마고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인데 다른 일반 차와 다르게 이 차는 발효차이지요. 청나라 황제에게 진상되던 귀한 차인데 그 이름 때문에 한국 사람들마저 너도 나도 이 차를 마시게 되어 요즈음은 가짜도 많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차는 맹해차창에서 3년간 숙성시킨 고수차인데 보이차 중에서도 최상품에 속하지요.”

“벽에 걸려 있는 붓글씨들은 직접 쓰신 건가요?”

“다시(茶詩)는 동료 문인 서예가가 직접 써 준 것이고 국화 그림은 친구 화가가 그려준 것이지요. 부채들에 그려진 그림들이나 문구들도 지인들의 작품이고요. 한 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 문구들 모두 지인이 준 것들이지요. 저 ‘바람 불어 좋은 날’은 판화가 이철수씨의 작품이고요. ‘어느 生에 또다시 만날까’ 저 글은 지리산 암자에 있는 비구스님이 음각해 준 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나는 저기 저 ‘처음처럼’과 ‘더불어 한길’ 두 문구가 마음에 들어 그 문구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들고 계신 그 찻잔은 골동품인가 보군요”
“찻잔은 많지만 정작 차를 마실 때는 이빨이 많이 빠진 이 찻잔과 물 나오는 데가 깨진 이 다관을 사용합니다. 10년 15년이 훨씬 넘은 것이지요.”

차를 따른 종지 찻잔에서 김이 오른다. 아련하게 피어 오른 김 연기 속에서 문듯 정연희씨의 수필 <넝쿨 사랑>을 떠올린다

<매미와 쓰르라미가 쓸고 간 햇살은 청량했다. 산등성을 넘어 들어선 한옥의 청정한 마당 건너에 발을 늘인 방이 객을 맞는다. 발 사이로 수줍게 불어오는 바람이 잘 결은 장판방에 머물고, 사방 탁자 하나에 찻상이 전부인 방은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고즈넉했다. 더러 늦더위가 서성대고 있는 발 너머 마당에는 맨드라미며 끝물 봉숭아의 꽃 빛이 꿈결이다.

주인이 찻잔에 따뜻한 물을 붓자 찻잔에서 문득 꽃구름이 피워 올랐다. 뽀오얀 김 속에 피어 오르던 자줏빛 꽃구름, 발 사이로 아른 거리는 끝물 꽃들의 빛깔과 어우러져 찻잔 위로 피어오른 꽃구름은 신비스러웠다. 이름하여 자운차, 칡꽃을 그늘에 말려 곱게 가루 낸 차, 칡꽃 차였다.

꽃구름을 피워 올리며 따뜻한 물에 녹기 시작한 자운차의 향기는 곧장 가슴으로 스며 들었다. 너울너울 잘도 퍼지던 칡넝쿨 언덕이 송두리째 가슴으로 안겨 들었다 >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오니 세찬 바람이 온 몸을 휘 감는다. 우주에서 시작해 수 많은 별들을 거쳐온 바람, 태평양을 만나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내 가슴으로 밀려오는 그 신비한 기운을 팔을 뻗어 감싸 안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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