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지만 남남…캐나다서 확산되는 ‘조용한 이혼’

함께 살지만 남남…캐나다서 확산되는 ‘조용한 이혼’

아이와 집 때문에 버틴다…감정은 이미 분리

캐나다에서 법적 이혼을 하지 않은 채 같은 집에 살며 자녀를 키우고 생활비를 함께 부담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이미 멀어진 부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를 ‘조용한 이혼(silent divorce)’이라 부르며, 신체적으로는 함께 있으나 정서적으로는 오래전에 분리된 상태라고 설명한다.

조용한 이혼은 공식적인 결별을 고려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는 감정적 단절의 한 형태다. 치료사들에 따르면 이 현상은 통계보다는 상담 현장에서 더 자주 포착되며,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캐나다 커플·가족치료협회 회장 앤드루 소핀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현실에 이름이 붙은 것”이라며 “아이를 위해 함께 산다는 오래된 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말했다.

소핀은 많은 부부가 가치관이나 바람이 맞지 않거나 친밀감과 로맨스가 사라진 상태에서도 관계를 유지하기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조용히 관계를 포기하는 현상”이라고 표현하며, 대개 막내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집을 떠날 때 상황이 끝을 맞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록된 이혼 건수는 4만2933건으로, 197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혼인한 부부당 이혼율이 감소했다고 해서 전체적인 관계 붕괴가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다가 헤어지는 커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법 전문 로펌 슐먼 앤드 파트너스의 대표 론 슐먼은 법적 이혼 통계가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 이혼은 혼인 관계의 해소만을 측정할 뿐이며, 사실혼 관계의 결별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산이나 양육 문제, 갈등이 전혀 없는 이혼도 통계에는 동일하게 반영되지만, 사실혼 해체는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다.

반대로 양육권이나 재산 문제로 갈등이 심각한 경우, 부부가 이혼 신고를 미루거나 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슐먼은 중요한 지표는 이혼 건수가 아니라 법원이 얼마나 많은 잠재적 분쟁을 처리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정 전문 변호사에게 상담을 요청하는지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의는 증가 추세에 있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의 공식 이혼율은 수십 년간 하락세를 보였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역사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상담 현장에서 관찰되는 상황은 관계가 더 안정적이 됐다는 해석과는 다르다. 몬트리올에서 집중 커플 치료를 진행하는 소핀은 코로나19 기간에 형성된 압박이 방역 조치 해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부부가 여전히 코로나19라는 충격의 여파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핀은 생활비 상승, 물가 인상, 정체된 임금 등 경제적 요인이 부부 관계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1년간 상담 현장에서 스트레스 수준이 꾸준히 높아졌으며, 문제는 단 하나에 그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재정 부담, 생계 유지에 대한 압박, 친밀할 시간의 부족, 파트너와의 단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용한 이혼은 특히 장기간 함께한 부부, 자녀가 있고 재정과 주택 소유로 얽혀 있는 경우에 더 자주 나타난다. 소핀은 젊은 커플은 비교적 쉽게 헤어지지만, 아이가 있고 재산이 얽혀 있을수록 관계를 유지한 채 정서적으로만 분리되는 현상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재산과 부동산 문제가 복잡한 고소득 가정에서 이러한 사례를 더 자주 본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태가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많은 부부는 막내 자녀가 집을 떠나고 나서야 도움을 구하게 된다. 소핀은 그 시점이 되면 관계를 유지하던 구조가 사라지면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외도와 같은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야 상담실을 찾기도 한다.

슐먼 역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용한 이혼의 징후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자에게 아직 분리를 알리지 않았거나 결정을 내리기 전 재정적 결과를 먼저 알고 싶다는 상담 문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감정적으로는 이미 관계에서 빠져나왔지만, 경제적 이유로 관계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가정법 분야에서는 매년 9월부터 연말까지 이혼과 별거 관련 사건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전년 대비 10~15% 증가를 보인다고 슐먼은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문의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그는 주택 시장 침체 속에서 집을 유지할지 매도할지를 두고 부부 간 갈등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12월에는 양육과 관련된 압박도 커진다. 연말연시마다 분쟁이 증가하는 것은 흔하지만, 올해는 자녀의 여행과 휴가 일정, 비용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고 슐먼은 말했다. 1월은 전통적으로 이혼 신청이 가장 많은 달로, 새해를 맞아 관계를 정리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재정 분쟁이 복잡해지며 이혼 문의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부부가 놓치기 쉬운 경고 신호로 정서적 거리감을 꼽는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친밀감을 피하며, 점점 멀어지는 관계를 합리화하는 것이 초기 징후다. 소핀은 파트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거나 친밀함이 의무처럼 느껴질 때 이미 단절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소핀은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트너와의 연결감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전문적인 커플 및 가족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다만 모든 치료사가 해당 분야에 숙련된 것은 아니라며, 충분한 자격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인지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슐먼은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법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의뢰인이 감정적 폭발 이후에야 사무실을 찾는다며, 짧은 상담만으로도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명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용한 이혼은 통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적절한 지원을 조기에 받지 못할 경우, 많은 부부가 자신들이 얼마나 멀어졌는지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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