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 발길 끊긴 미국…미 관광 산업 “자초한 재앙”

캐나다인 발길 끊긴 미국…미 관광 산업 “자초한 재앙”

트럼프 관세·비하 발언 후폭풍…미국 외면하는 국제 여행객

시애틀 퍼스트 애비뉴 인근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여름이면 토론토 블루제이스 모자를 쓴 캐나다인 관광객들로 붐볐던 거리가 올해는 눈에 띄게 한산하다.

시애틀에서 ‘프리 워킹 투어’를 운영하는 조 쿠넨은 올여름 블루제이스 모자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관광객들이 원하는 만큼만 지불하는 방식의 도보 투어를 운영하지만, 캐나다인 관광객이 거의 사라지면서 전체 고객 수가 30% 줄었다. 쿠넨은 직원들에게는 급여를 주면서도 자신은 받지 못했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 저축까지 투입해야 했다. 그는 “정말 화가 난다. 실망스럽고 슬프다. 이런 상황은 자초한 상처”라고 말했다.

시애틀의 또 다른 투어 운영자 존 브링크 역시 비슷한 타격을 입었다. 캐나다 유일의 메이저리그 팀인 블루제이스와 시애틀 매리너스가 맞붙는 5월 시리즈는 평소 캐나다 팬들로 성황을 이루지만, 올해는 발길이 뜸했다. 브링크가 운영하는 ‘테이스트 투어스’는 캐나다인 고객이 절반이나 줄었다.

캐나다인들은 봄부터 미국 여행과 제품 구매를 보이콧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 속에서 캐나다를 비하하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한 것이 계기였다. 시애틀과 같은 국경 인접 도시들은 특히 그 공백을 크게 체감하고 있다.

국제 관광객 감소도 이어지고 있다. 관광 분석업체 ‘투어리즘 이코노믹스’는 당초 올해 미국의 국제 방문객이 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최근 전망에서는 오히려 8.2% 감소할 것으로 수정했다. 이는 전년 대비 1~7월 캐나다인 방문객이 4분의 1 줄어든 것이 큰 요인이다.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는 미국이 올해 1,250억 달러(약 171조 원) 규모의 국제 관광 수입을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사 대상 184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감소세다.

“미국,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영국인 롭 호킨스는 2026년 미국 여행을 취소하고 한국과 일본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그는 “미국은 록앤롤, NASA, 재즈, 할리우드, 혁신과 사과 파이의 나라였는데, 지금은 국경수비대와 내분이 가득한 모습만 보인다”고 말했다.

프랑스 여행 컨설팅 업체 프로투리즈므의 디디에 아리노 대표는 “전쟁이나 보건 위기 상황에서 이런 급감은 있었지만, 평시에는 전례 없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국가는 신규 ‘비자 무결성 수수료’ 250달러까지 부과돼 여행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줄리아 심슨 WTTC 회장은 “세계 최대 관광 시장인 미국은 수요 부족이 아니라 정부의 무대응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이 환영의 문을 여는 동안 미국은 ‘닫힘’ 표시를 내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전역서 체감되는 관광객 공백

시애틀 투어 운영자 브링크는 미국 크루즈 관광객들이 일부 손실을 메웠지만, “관세와 정치적 발언만 없었더라도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서프 시티 투어스’를 운영하는 아담 듀포드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봄방학도, 메모리얼 데이도 없었다”며 올해 매출이 49% 줄었다고 밝혔다. 가짜 뉴스와 대형 산불 보도가 겹치면서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렸고, 특히 매년 봄방학에 몰리던 캐나다인들도 오지 않았다.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의 회복도 지연되고 있다. 미국 국가여행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관광객 수는 팬데믹 이전의 91% 수준이었다. 투어리즘 이코노믹스는 완전 회복 시점을 2029년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기존 전망보다 3년 늦춰진 것이다.

“이웃 캐나다인의 발길, 멕시코·유럽으로”

캐나다는 미국에 가장 많은 관광객을 보내는 나라다. 2024년 미국 전체 국제 방문객의 28%가 캐나다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데이터는 캐나다인들이 미국 대신 멕시코, 카리브해, 유럽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항공사들도 노선을 줄이고 있다. 항공 분석업체 시리움에 따르면 올 2분기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항공 좌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9만 200석 감소했다.

시애틀 방문객 전략 책임자 마이클 우디는 “올해는 캐나다인 방문객의 4분의 1 이상을 잃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올 캐나다인들을 환영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주 지역 상점 ‘메이드 인 워싱턴’의 마이크 몬델로는 “올해는 다를 것임을 일찌감치 깨달았다”며 “사업 부진이 아쉽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애틀은 2026년 월드컵 개최 도시 중 하나로, 인근 밴쿠버와 협력해 관광객 유치를 준비 중이다. 약 75만 명이 경기를 보기 위해 시애틀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월드컵 특수로도 올해의 타격을 만회하기 어렵다고 본다.

“준비가 되면 언제든 환영한다”

캐나다인 관광객 감소는 올랜도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뚜렷하다. 올랜도의 호텔 예약은 둔화했고, 라스베이거스 역시 1~7월 방문객이 전년 대비 8% 줄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관광청 CEO 스티브 힐은 “일부 캐나다인들은 원칙적으로 미국을 가지 않으려 한다”며 “우리는 준비돼 있으니, 그들이 준비되면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 의회가 ‘브랜드 USA’ 마케팅 기금 지원을 줄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캐나다인 관광객의 복귀 없이는 미국 관광산업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인 호킨스는 “열심히 일하는 미국인들이 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언젠가 옐로스톤과 라스베이거스를 다시 찾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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