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총리, 미국 관세에 맞서 보복 조치 발표… 미 주류 판매 금지
트럼프, 2월 4일부터 캐나다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 강행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데이비드 이비(David Eby) 총리는 미국의 대규모 관세 조치에 대응해 즉각적인 보복 조치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이비 총리는 1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조치는 캐나다와 미국 간 오랜 우정을 저버리는 행위”라며 “BC주 노동자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적으로, BC주 주류 유통 공사(B.C. Liquor Distribution Branch)에 공화당이 이끄는 ‘레드 스테이트’(red-state) 주에서 생산된 미국산 주류 구매를 즉시 중단하고, 공영 주류 매장에서 해당 제품을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비 총리는 앞서 미국이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보복 관세 및 미국산 제품의 수입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번 주류 판매 금지는 그 첫 조치로 해석된다.
공공기관, 미국 제품보다 캐나다 제품 우선 구매 지시
이비 총리는 이날 BC 주정부와 공기업들에게 미국산 제품 및 서비스보다 캐나다산을 우선적으로 구매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더 크다고 해서 우리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우리가 단호히 맞서지 않으면 미국은 계속해서 우리를 압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2월 4일부터 캐나다산 수입품 대부분에 25% 관세를, 캐나다산 에너지 제품에는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BC 경제에 미칠 심각한 타격
BC주 정부는 이번 관세 조치가 BC 경제에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이번 관세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유지될 경우 BC주는 2028년까지 약 690억 달러(약 91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벌목 산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는 목재 다섯 개 중 하나는 캐나다산이며, 이제 그 가격이 25% 더 오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BC 독립 목재 가공업 협회(Independent Wood Processors Association of B.C.) 브라이언 멘지스(Brian Menzies) 회장은 “이번 조치는 벌목업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라며 “이미 미국은 BC산 연질목재(softwood lumber)에 14.4%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여기에 25%가 추가되면 총 40% 가까운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자급자족과 무역 다각화 추진
이비 총리는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자급자족 및 무역 다변화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 경제를 국경 밖의 불확실한 세력에 맡길 수 없다”며 BC주 내 천연자원을 활용한 대체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BC주는 민간 부문에서 총 200억 달러(약 26조 원) 규모의 10개 프로젝트를 선정해 신속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광산 개발, 신재생 에너지, 천연가스 사업 등이 포함되며, 정부는 승인 및 인허가 절차를 최대한 단축할 계획이다.
BC 상공회의소(B.C. Chamber of Commerce) 피오나 파뮬락(Fiona Famulak) 회장은 “정부가 BC 경제의 장기적 회복력 확보를 위한 전략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라며 “무역 다변화뿐만 아니라 캐나다 내 주간 무역(interprovincial trade) 장벽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BC주가 펜타닐 생산에 관여” 주장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한 행정명령에서 BC주가 미국 내 펜타닐(fentanyl)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관세 부과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는 캐나다를 통한 불법 이민과 마약 밀반입이 주요 이유라고 주장했다.
캐나다 금융정보국(FINTRAC)은 최근 보고서에서 BC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여러 조직들이 캐나다 내 펜타닐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 자료에 따르면 작년 캐나다 국경에서 압수된 펜타닐은 19.5kg에 불과하지만, 멕시코 국경에서는 무려 9,592kg이 압수되었다.
이에 대해 이비 총리는 “우리도 BC 내 펜타닐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미국이 캐나다와 협력해 중국과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펜타닐과 마약 전구체(drug precursor), 조직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비 총리, 워싱턴 D.C. 방문 예정
이비 총리는 캐나다 각 주 총리들과 함께 이달 말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국 정부와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이번 조치는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피해를 줄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 내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이 조치를 철회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연방정부 역시 이날 보복 관세를 발표했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미국이 캐나다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만큼, 캐나다도 1,550억 달러(약 205조 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동일한 2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BC주와 캐나다 정부의 대응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