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괜히 좋으면서

<문학회 수필> 아빠는 괜히 좋으면서

정은주
빅토리아문학회 회장/조이침한방 원장

석달 전 아래 층에 한국에서 이쁜 딸 아이 두 명을 둔 부부가 이사를 왔다. 아이들은 터울이 좀 있다. 자그마치 10년. 13살과 3살이다. 절대로 안 싸울 것 같은 나이지만 둘은 싸우는 일이 종종 있다.
첫째 아이 공동 육아 때 만들어진 닉네임을 아직까지 부르고 있는 우주선과 민들레 가족.
이 가족의 분위기 메이커인 둘째 가온이는 이제껏 내가 보아온 그 어느 세살짜리 보다 말을 잘 하는 아이다.
상황에 맞게 단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나보다 훨씬 뛰어난 듯 싶다.
올해로 이민 14년째인 나의 우리말 어휘는 도대체가 형편이 없다.
나는 대명사로 말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탁을 할 때도 말하고 싶은 표현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대명사로 먼저 말한 다음에 한 박자 늦게 이야기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자기야, 거기 가서 그것 좀 가져다 줘.” “그거 있쟎아…..” 이건 저렇게 하면 되는데’..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 원참..
반면, 가온이는 어른들도 웃고 넘어가는 나의 허술한 대명사 표현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조이샘, 누구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가 어디에요? 뭘 가져다 드릴까요?” 라고 정확하게 질문을 하곤 한다.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주일날 저녁, 교회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탓에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다.
아래층도 그런 듯 싶어 “목자 회의 다녀와 떡볶이를 해먹자”고 얘기를 해 놓고는 목자회의를 갔다. 회의가 끝날 무렵 목사님이 쏘시는 베트남 국수의 유혹에 못 이겨 아래층에 떡볶이 공수표를 날렸다. 미안한 맘에 하트 뿅뿅을 날려 가며 문자를 보냈다.
월요일 저녁, 친한 친구가 집에 오기로 했으니 떡볶이를 하면 내려다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떡볶이 떡이 없고, 떡국 떡만 있는 것이었다. 친구가 그냥 라면도 괜찮다고 해서 해물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을 먹고 나니 아래층에서 문자 왔다. 떡볶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아뿔싸! 잊고 있었다. 미안함을 가득 담아 떡볶이 떡이 없어 그냥 라면 끓여 먹었다고 사정하며 두번째 공수표를 날렸다.
친구가 예상보다 일찍가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두 번이나 공수표를 날려서 미안하다고, 지금이라도 떡볶이 먹고 싶으면 떡국떡과 오뎅으로라도 해주겠다고. 근데 우주선이 괜찮다고 그냥 라면 끓여 먹으려 했다고 서운한 기색을 비추며 “괜찮습니다”를 연발했다. 그 모습을 본 가온이 왈
“아빠는 괜히 좋으면서~~~” 세 살박이 가온이 눈에도 우주선이 내심 원하지만 약간 삐진 마음에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던 것이었다.
그날 나는 떡볶이 한 솥을 해서 아래층에 내려다 주어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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