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꽃향기를 듣다

삼월, 꽃향기를 듣다

이재랑 (빅토리아 문학회 회원)

다시삼월이다.피난가듯재택근무를시작한지꼬박일년이되어간다. 추후통지가있을 때까지 재택 근무를 실시한다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업무에 필요한 몇 가지들만 챙겨서 쫒기듯 집을 향했다. 계절 하나 지나면 누그러들겠지. 모두들 불확실한 희망을 붙들고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콧방귀 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바이러스가 개인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공동체, 나아가 지구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이야 상상이나 했던가.

뫼와 들에 물이 오른다는 물오름달이다. 상상 한 모금만으로도 대지의 생명력이 온 몸으로 전율되는 그런 달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동네 모퉁이만 돌아도 이름 모르는 풀꽃과 이름 아는 꽃들이 하나 둘씩 얼굴을 내민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자신만의 모습대로 피어나는 꽃들로 오감이 즐거운 달이다. 삼월은 항상 그랬다. 바이러스 하나가 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때까지는. 과거의 삼월이나 지금의 삼월이나 자연은 늘 그러하듯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나의 오감은 생명을 잃어 버린 채 온통 회색빛이다. 사람과의 접촉이 의심과 두려움이 되어 버린,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조심스러워진 세상에서 나의 교감 신경이 조금씩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삼월은 또 우리를 찾아 왔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손바닥만한 화단에 설날 선물로 하늘이 내려준 눈설기가 땅 속으로 거의 다 스며들 때 쯤, 제비부리같이 생긴 연두빛 싹들이 여기 저기 올라 오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박아 둔 수선화 300 여 알이 차갑고 축축한 흙을 비집고 하나 둘씩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들을 심었다는 것 조차 겨우내 잊고 있었는데 이 밤톨만한 생명들은 때를 알고 나 여기 있소 하고 몸짓한다. 눈을 가까이 가져 가지 않을 수 없다. 입꼬리가 저절로 귀를 향해 뻗친다.

‘꽃에게서 들으라’.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모진 겨울 추위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그 인고의 세월을 꽃으로 열어 보이고 있다. …. 건성으로 스쳐 지나가지 말고 그 곁에서 유심히 들여다보라. 꽃잎 하나하나 꽃술과 꽃받침까지도 놓치지 말고 낱낱이 살펴보라. 꽃이 놀라지 않도록 알맞은 거리에서 꽃향기를 들어 보라. 꽃향기는 맡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 지난 일여년 가위 눌린 듯 먹먹하고 답답했던 내 영혼과 정신에 꽃향기가 날아든다. 각자 제 모습대로 피어나는 삼월, 문향의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찾아 꽃향기 들으러 문을 나서야겠다.

* 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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