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류 궁중 문학 ‘한중록’

[빅토리아 독서클럽-책추천]한국의 여류 궁중 문학 ‘한중록’

추천인 :박효진

‘고전문학’ 하면 어떤 책들이 떠오르시나요?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위대한 개츠비>, <동물농장>, <데미안> 등의 대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고전 문학을 쓴 여성작가를 떠올려봅시다. 아마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 정도가 떠오를 것 같네요. 위에 언급된 책들은 고전 독서 소모임을 시작하며 제가 읽으리라 예상했던 책들입니다. 실제로 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시작을 했지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죄다 외국 문학들일까? 한국 고전문학은 뭐가 있지? 그 당시 한국 여성이 쓴 문학이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생각 끝에 읽게 된 한국 고전 궁중 수필이자 여성 작가 혜경궁 홍씨 집필의 <한중록>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한중록은 한가할 때 쓴 글이라는 ‘閑中錄’,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한을 풀어 쓴 글이라는 ‘恨中錄’ 두 해석으로 나뉘어집니다. 이렇게 해석이 나뉘는 이유는 바로 한중록이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남의 나라 문자가 아닌, 우리 고유의 글자, 한글로 쓰여진 문학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한중록>, 시작하겠습니다. 

<한중록> 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사건, ‘임오화변’. 바로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죠.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가 ‘임오화변’ 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던 인물이기에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수필에서 그 이야기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겠습니다. 사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는 <한중록>의 한 부분일 뿐 전체의 내용이 아닙니다. 혹시 사도세자 이야기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얼른 그 생각 내려놓으시고 책을 집어드셨으면 합니다.

 네 번에 걸쳐 완성된 글로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아들 ‘정조’가 승하한 뒤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첫 편을 읽으면 ‘임오화변’에 대한 내용은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고 대부분의 내용이 그녀가 어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세자빈이 되었는지 등 그녀의 입궁 전과 후의 삶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중에서야 혜경궁 홍씨는 그 당시 태어나지 않았던 순조가 정확한 사건의 내막을 알고 신하들의 거짓된 음모 속에 휘둘리지 않게 하기 위해(동시에 자신의 친정을 보호하기 위해) 임오화변의 이야기를 세세히 적기 시작했습니다.

주상(순조)이 어려서 이 일을 알고자 하셨으나 선왕(정조)이 차마 자세히 알려주지 못 하셨으니, 다른 사람이 누가 감히 이 말을 하며 또 누가 이 사실을 자세히 알리오. 따라 서 내가 곧 없어지면 궐내에서는 알 사람이 없으니 자손이 되어 선조의 큰일을 모르게 되면 망극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임오화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은 다 허무맹랑한 것이며 이 기록을 보면 그 일의 처음과 끝을 분명히 알 것이다.

원래 아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고, 저 또한 사도와 영조의 이야기를 읽을 때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영조의 잘못된 조기 교육과 지나친 엄격함을 탓하며, 또 한편으로는 영조가 한 발 양보하고 손을 건넸을 때, 그를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엇나갔던 사도를 아쉬워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씨는 최대한 중립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누구의 탓으로도 기록하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영조께서 처음에는 비록 자식사랑을 더하지 못하셨으나 나중에는 어쩔 수 없으 셨고, 경모궁께서도 타고난 성품과 본성이 어질고 너그러우셨으나, 병환이 망극 하여 종묘사직 의 존망이 절박한 때 어쩔 수 없는 일을 당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영조가 그렇게 미울 수 가 없습니다. 사도세자가 효창세자가 죽고 난 후 어렵게 가진 하나뿐인 아들이었던 탓이었을까요? 게다가 어려서부터 쓸데없이(?) 매우 영특하기까지 하니, 영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치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 크나 큰 기대가 너무 이른 조기 교육으로 이어지면서 비극은 시작이 됩니다. 지금도 잘못된 자녀 교육법이나 부모의 과한 교육열,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지적할 때 ‘영조의 세자교육’ 이 함께 거론되곤 하니, 많은 사람들이 영조의 교육이 잘 못 되었다는 것에 동의를 하는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자녀가 있으신 분들이 읽으셔도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같이 듭니다.

만일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여 모든 일을 자애와 가르치심으로 병행하였더라면, 너그럽고 어진 도량과 재능의 성취가 놀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일찍 멀리 떠나 계신 것으로 인하여 작은 일이 크게 되어, 마침내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영조께서는 이럴수록 가까이 두시고 친히 가르쳐서 서로간의 인정과 도리가 친 하게 될 방법은 생각지 않으신 채, 항상 멀리 두시고 동궁 스스로 잘하여 당신의 뜻에 맞으시 길 기대하시니, 이럴 때 어찌 탈이 나지않으리오.

사도와 영조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직접 읽으시기를 바라며 임오화변에 대한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한중록을 읽기 전 혜경궁 홍씨는 저에게 단지 사도세자의 부인, 그 뿐이었습니다. 우린 항상 영조,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에 대해서만 자세하게 배웠지 정작 혜경궁 홍씨에 대해서는 그저 사도세자의 부인 이라고 밖에 배운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수필을 다 읽은 지금, 그녀는 생각이 무척 깊고 내적으로 단단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그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자신의 아들을 왕의 자리까지 올린 것이겠지요? 임오화변 후, 그녀는 상황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 아들이라도 지켜 내기 위해 재빨리 세손을 영조에게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 행동으로 인해 영조는 혜경궁 홍씨가 더이상 세자빈이 아닌 서민이 된 상황에서도 그녀를 끝까지 아꼈다 생각 됩니다. 후에 영조는 그녀를 가엽게 여겨 ‘가효당(嘉孝堂)’ 이라는 현판을 직접 써 그녀가 거주하는 집에 달게 하기도 했으니까요.

“모자(母子)를 보전함이 다 임금의 은혜 덕분입니다.”
그러자 영조께서 손을 잡고 우셨다.
“네가 이럴 줄을 생각지 못하여 내가 너를 볼 마음이 어렵더니, 내 마음을 편케 해 주니 아름답다.”
 “세손을 경희궁으로 데려가셔서 가르치시길 바랍니다.”
“세손이 떠나면 네가 견딜 수 있겠느냐?”
내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아뢰었다.
“세손이 떠나서 섭섭하기는 작은 일이요, 위를 모시고 배우기는 큰일입니다.”

세손을 보낼 당시의 심정을 그녀는 ‘마음이 칼로 베는 듯했다’ 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칼로 베이는 아픔을 참으며 아들을 그녀의 남편이 죽음을 맞이한 그 궁으로 홀로 보내니 정말 대단한 어머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책을 소개할 때 혜경궁이 (첫 편을 제외한 그 이후의) 한중록을 쓰게 된 것이 순조가 정확한 사건의 내막을 알기 위해서도 있지만, 자신의 친정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였다 말을 한 것, 혹시 기억 하실까요? 한중록에서 임오년의 사건과 정조를 왕으로 올린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함으로 인한 친정 집안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시기적으로 정조의 죽음 이후 순조가 왕위를 이어받으며 영조 때의 마지막 왕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거든요. 기득권을 차지한 정순왕후는 사도의 죽음을 슬퍼했던 신하들을 몰아내고 벽파의 신하들을 대거 등용을 했으니, 사도의 외척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집안도 무사하지 않았겠지요. 

내가 언제 눈을 감을지 모르기에 이것을 가순궁에게 맡겨 내가 없는 후라도 주상께 드려서 내가 겪은 일의 기구함과 내 집 처지의 원통함을 알리고 30년 동안 쌓인 원을 풀어 주시는 날이 있기만을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죽은 넋이라도 지하로 가서 선왕을 뵙고 임금의 혈통을 두어 뜻을 잇고 일을 알려 모자의 평생 한을 이룬 걸 서로 위로할 것이니, 이것만 하늘에 빌 뿐이다.

이 때문에 몇 일부의 사학자들은 한중록이 오로지 혜경궁 홍씨(와 그녀의 가족)의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없다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실록과 비교했을 때 중립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역사의 보조 자료로 인정을 받고 있는 문학입니다. 

마무리하며,

한중록을 읽다 보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도 세자의 바로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 봐온 혜경궁 홍씨가 사도와 영조 사이 부자간의 대화부터 작고 큰 사건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기록을 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동시에 영화 ‘사도’를 보았는데 ‘한중록’ 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적 사료 가치가 높은 책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도를 가둔 곳이 ‘뒤주’였다는 내용도 한중록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언급되었다고 하니 그녀의 기록이 없었다면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이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시대 흔하지 않은 여류 문학, 또한 궁궐 내 이야기가 쓰여진 궁중 문학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생각이 됩니다. 오늘 제 글이 ‘한중록’ 에 대한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자극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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