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문을 닫다

[빅토리아 문학회-단편소설] 사랑이 문을 닫다

엘리샤 리 수필가, 화가/빅토리아문학회 회원

전화벨이 울린다. 

그이의 전화 번호다. 수영은 반가워서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든다. 호영씨가 폐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한 지 몇 달 째 인데 오늘 조금 정신이 드는가? 그의 음성을 기대했던 수영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자의 음성에 흠칫 놀란다. 

“여…보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수영은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살핀다. 

“네, 나는 호영씨 아내 되는 사람이예요.” 

“네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이가 지난 달 세상을 떠났어요. 그이의 전화기 속에 들어있는 당신의 번호로 이렇게 그이의 죽음을 알려 드립니다.” 

“아,, 네…” 예상보다 일찍 다가온 그의 죽음앞에 아무말도 못하고 수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쪽에서 할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동안 당신과 우리 남편이 나누었던 수 년 간의 사랑의 밀어들을 며칠 동안 다 읽었어요. 다행히 그이가 세상 뜬 후에 그이의 전화기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만약 그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일을 알았다면 나는 당장 이 전화기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렸을 꺼에요.”

“그러셨을 테지요. 이해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당신과 우리 남편은 참으로 질긴 인연이었네요.” 여자의 음성은 빛 바랜 꽃처럼 나락으로 떨어져 허공을 친다.

“오해하지 마세요. 내가 그 분을 못 뵌 지는 수 십 년이 넘었어요. 우린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유치한 불장난으로 만난 인연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분은 사회적 지위도 있고 가정을 잘 다스리려는 신념도 있었어요. 나는 늘 그분의 생각을 존중해 왔구요.”

“그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아내의 음성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다시 한 곳으로 모아지는 듯 한다.

“그 분의 잘 못은 없어요. 내가 항상 먼저 연락했고 결국 우리 둘의 인연은 내가 끌고 간 것이니까요.” 수영은 지금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아내의 심기를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말 한다.

“그렇게 우리라는 단어를 쓰지 마세요.” 아내의 음성이 높아지면서 신경질 적으로 변한다.

“아, 그랬다면 실례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카톡 속에서 내 남편에게 늘 ‘당신’이라는 말로 주고 받았는데 아주 기분 나쁘네요.”

그의 아내는 무슨 말이든지 해 대면서 남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수영에게 분풀이 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이제 그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우리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나요? 가신 분의 명복을 비는 것이 서로에게좋겠어요.”

1960년대 후반 동양 FM을 통해 들려오는 ‘한 밤의 음악 편지’는 뭇 소녀들의 가슴을 불 타오르도록 했다. 수영은 호영씨와의 인연을 더듬어본다. 꽃 다운열 여섯, 그녀는 밤 마다 그의 프로그램에 푹 빠져서 사춘기를 불태웠다. 방송이 끝나는 밤 12시, 그 시간에 맞춰 택시를 집어 타고  방송국으로 달려가서자신의 마음을 전달 하면서 키워온 사랑이다. 그가 오래전에 미국 이민 가서 다시 지역 한국 방송과 신문 편집장을 역임 했었고 몇 년 전 은퇴하여 아내와 함께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수영과 호영씨와의 인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요즈음 70 살이면 한창 나이다. 이렇게 한 마디 이별의 통보도 없이 가버린 그의 죽음 앞에 수영은 넋을잃고 울고 있다. 평생 그녀를 받치고 있던 기둥이 ‘툭’하고 무너져버린 심정이다. ‘내가 너무 깊고 넓게 그의 둥우리를 틀고 있었구나.’ 수영은 먹는 것도잊은 채 매일 끄억거리며 눈물속에서 살고있다.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휘청거린다. 울다가 그와 함께 듣던 음악을 틀어놓고 지난날을 생각하며 한때행복했던 시간을 더듬는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현실 앞에서 늘 목 마른 사슴처럼 살아온 수영이다. 슬프고 또 슬프다.  일반인들에도 공개된 부고를 통해 그가 묻혀있는 곳을 알아낸 수영은 코로나가 풀리면 이제는 세상 모든 근심 다 뒤로하고 편히 잠자고 있을 그의 무덤을 찾아가 꽃 한 송이 올려 놓으려고 벼르고있다. 

오십 여 년의 인연! 어찌 그 보다 더 한 일인들 못하랴. 호영씨는 그가 밤마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 보내던 음악처럼 그렇게 속이 부드러웠던  남자다. 때로는 오빠처럼 때로는 아빠처럼 한 여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슴 깊이 심어 놓고 떠나갔다.

‘이 세상에 기분 좋은 이별은 하나도 없다. 이별은 늘 한 쪽에서 보내 오는 슬픈 가사다.’

수영은 이렇게 매일 중얼거리며 슬픔을 달래고 있다.  호영씨의 죽음으로 수영이 생명처럼 소중히 간직해 왔던 ‘사랑의 문’이 닫혀버렸다.  다시 열수 없는 문이다. 

오랫만에 겨울비가 멈추고 창가에 내려앉은 햇살이 수영앞으로 친구되어 다가와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준다.  ‘이제 울지마, 그래도 그동안 행복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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