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에 관하여

핑계에 관하여

김세리/빅토리아 문학회 회원

살면서 핑계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나름 잘 해내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지만, 삶의 어느 한 부분은 운이 좋아 잘된 일들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잘 되지 않았던 일들도 있었다. 그게 삶의 모양인가 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마다 항상 핑계가 따라 다녔다. 도대체 요녀석은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질기게도 따라다니는가. 약간 품격있는 말로 하자면 ‘자기합리화’라고 대체해줘도 불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나를 따라 다녔던 핑계를 회상해보자면, 고등학교때 수능에 대비한 학력고사를 매월 치른적이 있었는데, 이날만 되면 꼭 배가 아팠다. 긴장한 탓인지 배가 잘 다스려 지지 않았다. 시험이란게 얼마나 그 긴장감을 이기고 시험문제를 풀어내는가를 측정하는 건데 긴장을 없애는것은 불가능했다. 처음 몇번은 괜찮겠지 했는데 수능이 다가오면서 슬슬 더 걱정이 되었다. 요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시험을 잘 못봤다는 것이다. 핑계가 사실(fact)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나름 이유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시험 결과만 보고 ‘핑계대지마. 넌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라고 말한다면 굉장히 억울할 판이다.

핑계의 사전적 의미(네이버국어사전인용)를 찾아보자. 명사로 1.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2.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 

구차한 변명이지만 그나마 그런 핑계도 대지 못하고 용납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팍팍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실수해도 괜찮아. 과정이 중요한거야”라고 가르치지만 그 과정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어른들은 알고 있다. 어른들이 “핑계대지마” 라고 훈육하기 보다는 “작은 핑계라도 괜찮아. 할수있는 만큼 해봐”라고 가르쳐주면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행복해질까? 

나의 삶을 타인과 비교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나의 핑계 많은 삶이 위인들처럼 훌륭하고 알차게 만들어 주지는 않을지라도 작은 노력으로 연결시켜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험을 볼 때마다 배가 아파서 시험을 잘 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나를 작게나마 격려해주는 연습을 했더라면 시험결과가 중요했지만 나의 건강을 무시할만큼 중요하지 않더라고 어느 누구 한명이라도 내게 언급해주었더라면 어쩌면 나의 뇌가 나의 내장을 잘 관리해줄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 핑계의 연속이 만들어 준 삶도 내 삶이다. 스스로를 인정하자. 내키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내라고 자신을 채찍질하지 말자. 피할수 있으면 피해라. 방패막이 있다면 든든하게 숨어라. 핑계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생겼다면 그 후회도 받아들이자. 그 후회로 뼈아프게 큰 교훈을 얻었다면 나의 핑계에 감사하게 될것이다.  

캐나다 생활 5년차에 접어들면서 이곳 사람들의 일하는 패턴을 보면 내 기준에서는 참 핑계가 많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렇게 핑계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서로를 그닥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작은 핑계든 큰 핑계든 잘 들어주고 인정해주려 한다는 것이다. 자칫 핑계가 많은  동료를 게으른 친구로 볼수도 있지만 그냥 그 삶을 인정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와서 얻은 첫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어느날 오지 않았다. 이유는 본인이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파서였다. 나는 처음에 아이가 아픈것도 아니고 애완동물이 아픈데 오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웃하며 “별 핑계가 다 있네”하고 이상히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는 그러했다. 그리고 우리집에 애완동물이 들어오고 나서 비로소 정확히 이해가 되었다. 나의 핑계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도 된다. 남들은 그닥 자신이 아닌 타인의 핑계에 관심이 없다. 

하기 싫은일이지만 반드시 하고 넘어 가야하는 일에 닥쳐있다면 그 일을 하지 않을 작은 핑계를 찾아보자, 그리고 그 일을 반드시 해야할 작은 핑계 또한 찾아보자. 예를 들어, 영주권으로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영주권을 얻기까지 최선을 다해보지만, 핑계를 찾아보자 ‘나는 너무 나이가 많다. 나의 영어실력으로는 턱도 없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야할 또 다른 핑계를 찾아보자. ‘이번 시험은 잘 못본게 당연해’, ‘나는 나이도 많아서 영어시험을 한번에 통과하기는 당연히 힘든거야’,  ‘그러니 다음은 시험은 잘 볼거야’  이런 작은 핑계가 여러분의 작은 원동력이 되어 여러분이 내딛는 삶의 여정의 작은 한발걸음이 주길 바래본다. 핑계많은 내 인생도 여러분의 인생도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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