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관참시(腐棺斬屍)

<손바닥소설(掌篇小說)> – 부관참시(腐棺斬屍)

한상영 소설가/문학평론가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1  보건부 윤영준 장관 성추행 사건에 대한 피해자 변호인 기자회견

기자 A: 지난 번 1차 기자회견에 고소인은 참석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안 나왔나요?

변호인 : 피해자는 지금 상당한 심적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피해자의 법적 대리인 입   니다. 참석 여부로 피해자에게 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행위이니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자 B: 발표하신 내용에 따르면 성추행이 5년 동안 지속 되었다고 하였는데 뒤늦게 고   소 하게 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요?

변호인 : 다시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이 사건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입니다. 어렵게 고   용 된 직장이며 인사 담당자에게 5년 간 지속적으로 자리 이동 요구를 해 왔으나   묵살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즉 피해자는 가해자의 추행 행위에서  벗어 나   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건부 내에는 피해자의 말을   제대로 들어 준 사람이나 조직이  없었다는 문제 제기를 하며 시스템과 절차가 제   대로 작동했는지,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한 자들에 대한  묵인과 비호는 없었는지   보건부 자체 내에서  객관적이고 철저한 진상 조사가 이루어 지도록 강력히 요구   할 것입니다. 진실이 이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SNS 상에서 추측성 해석을 하며   악의 적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피해자가 심히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입니다. 

기자 C : 경찰은 윤영준 장관의 죽음이 자살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   소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하고 수사 종결 했습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진상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전   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윤영준 장관이 죽기 전에 ‘모두에게 미   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이 내용은 고소장에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고   피해자에게도 사과를 한 것이 아니겠냐는 해석도 합니다.

변호인 : 그 기사를 나도 보았습니다.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이나 뉘   우침이 있었다면 그렇게 무책임한 글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주창하고 역설해 왔던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많은 행위가 진심이었다면 떳떳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응하는 벌을 받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아울러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서 도망하듯  후딱 죽음을 택하는 모습   은 일개 정부 부처를 책임지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로서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태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보건부 윤영준 장관 성추행 사건에 대한 피해자 마지막 입장문                                                                                                                

오늘 부로 나로 인해 제기된 추행 사건과 관련한 모든 공적 행위를 중단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나에게 일어난 가해자의 추행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 답게 살고 싶은 마음을 접은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지금도 추행이 있었던 순간에 내가 견뎌야 했던  혐오스러웠던 기억을 떠 올릴 때마다 악몽을 꾸듯 몸서리쳐 집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가해자는 마땅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인 나에게 엄중히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5년 간 왜 가만히 있었냐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처음 그때 나는 소리 질러야 했고 울부짖었어야 했으며 바로 신고 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수없이 후회하며 자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했어야  불평등한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는데도 또 그늘 진 곳에서 암 버섯처럼 횡행하는 여성들의 성적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효과 있게 전개하는데도  특별한 기여를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에게 추행을 했던 분은 사회적으로 인망이 두터운 분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분입니다. 그 분은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너무나 많은 업적을 쌓아온 의학박사 입니다. 이번 코로나 19 방역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체계를 확립한 주역으로 추앙 받는 분이며 특히 여성의 인권 신장과 성 평등을 위해 누구보다도 더 앞에 서서 싸워 왔던 분이기에 더욱 특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분은 불의와 욕망이 넘쳐 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이성이 돋보였던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존경했으며 나 또한 그 분을 존경했기에  그 분 곁에서 일 할 수 있게 된 것에 얼마나 많은 자부심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있는 힘을 다해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던 날, 나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 놓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무언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그 동안 나를 괴롭혔던 단어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용기가 없어 차마 입에 담기 조차 못했던 그 길을 그 분은 택했습니다. 나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분이 평소에 일에 열중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하는 언행에서는 이성이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내게 향했던 혐오스런 추행은 분명 욕정일 진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도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분의 죽음을 도피라고 폄훼(貶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이의 삶을 존중해 주어야 하듯 모든 이의 죽음도 폄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뿐인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분은 그 동안 수 없이 욕정과 이성 사이를 왔다 갔다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 분의 진짜 모습 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상반되는 두 모습.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 놓은 그 분의 결정은 그 분의 이성이 내린 형벌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렇게 그 분은 이미 스스로에 의해 사형 선고가 집행된 상태인데 내가 낸 고소장을 고수해서 다시 처벌해 달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사법부가 유죄를 선고 한다면 그분은 그 옛날 왕이나 내릴 수 있는 부관참시(腐棺斬屍) 형을 받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귀한 존재라 해도 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히고 고통을 안겨 주었던 하이드는 죽었습니다. 다시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킬 박사 만은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그 동안 나의 고통에 동참해 주셨던 여러 분들의 세상도 인간 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나에게 가해지는 의혹의 시선과 비난을 막아주시려고 애쓰셨던 분들 그리고 진상 규명을 위해 나를 대신하여 법적 업무를 맡아 주신 변호사 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특히 나와 연대한다는 의사를 밝히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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