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다(飮茶), 행다(行茶) 그리고 선다(禪茶)

<문학회 수필> 음다(飮茶), 행다(行茶) 그리고 선다(禪茶)

한상영 소설가/문학평론가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동양 3국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문화가 대체로 그렇듯이 차(茶) 문화도 중국에서 발단하여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승되는 과정을 거치며 그 나라에 맞게 독특하게 발전 되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4000년 전부터 라고 합니다. 영어로 tea라는 용어도 어원이 차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차는 인도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퍼져 나가 전 세계인의 기호 식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773년 보스톤 차 사건이 있었습니다. 차가 미국 독립의 원인이 되는 역할을 한 사건입니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물이 5460Km를 흘러 우리나라의 서쪽 황해로 나가는 황하(黃河)는 말 그대로 누런 물입니다. 그런 깨끗하지 못한 물을 끓여 먹기 시작한 것이 차를 마시게 된 원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반 발효차인 우롱차 같은 것은 기름진 중국 음식의 느끼함을 씻어주기 때문에 식후에 음료수처럼 마신다고 합니다. 당나라 시대 육우라는 사람이 다경(茶經)이란 책을 저술하였는데 차의 재배에서 부터 제조, 필요한 도구와 수반되는 각종 다기(茶器), 차를 끓이고 마시는 법과 차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수록하였습니다. 일부 부유한 계층의 중국인들이 차를 마시면서 찻잔이나 다반 같은 그릇들을 비싸고 호화롭게 사치하기도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깨진 종지 잔으로 마셔도 무방하게 중국인들에게 있어 차는 대중화하여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다(飮茶)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차는 음료로서의 차의 본질보다는 차를 담는 그릇이라든지 차를 따르는 자세 등 비 본질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으로 차 문화가 발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으로 차가 전래된 시기는 백제가 멸망한 7세기 말로 봅니다. 백제의 왕족을 위시하여 많은 유민들이 망명하면서 융성했던 백제의 불교 문화와 함께 차도 전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불교 승려들에 의해 차 문화의 명맥이 유지되다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 들에 의해 도자기 문화가 왕성하게 일어 나면서 동시에 차 문화도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엄격한 무사적인 사회 분위기가 마셔서 없어지는 차보다는 차를 담는 도구들을 고급화 하여 자신의 위치를 돋보이게 하고 차를 따르고 마시는 자세를 엄격히 하는 독특한 사무라이 적인 차 문화를 창조했습니다. 다완, 다반, 다선, 찻잔 등 각종 화려한 다기(茶器)와 다실의 치장, 다구의 위치, 차를 마실 때의 절차, 차를 따르고 마시는 형식에 중점을 두어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차 문화를 다도(茶道)라고 명명하며 스스로 격상 시켰습니다. 무릇 도(道)라 함은 정신적이고 내면적이며 본질적인 것입니다. 차를 마시는 그릇이라든지 차를 마시는 의식, 절차 같은 것은 지극히 외향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차 문화는 다도(茶道)라기 보다는 행다(行茶)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 12월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 왔기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라는 기록과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에 와서 크게 유행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6세기에 이미 우리나라에 차가 전래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통일 신라시대 궁중 예불시에 헌다(獻茶)의식이 있었으며 고려시대는 궁궐내의 각종 행사에서 차를 올리는 진다의식(進茶儀式)이 있었고 조선 왕조 때에도 궁중에서 제사 때나 사신을 맞이할 때 다례(茶禮)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차는 귀한 것으로서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와 이조 시대 지배 계층인 양반들은 술과 시와 음악으로 풍류를 즐겼는데 그들 중에서 일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은 술 대신에 차를 마시며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차는 대중화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불교 문화가 꽃 피웠던 신라시대 문무왕이 예불시에 헌다(獻茶)할 것을 명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우리의 차 문화는 불교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설총이 신문왕에게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하여 차를 마실 것을 권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차는 참선 수행을 하는 승려들에게 필수품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교를 건국 이념으로 삼은 조선 왕조가 들어서며 불교가 쇠퇴하면서도 심산유곡에서 참선 수행을 계속해온 승려들과 그 곳 불사(佛寺)를 드나든 수많은 신자들에 의해 우리의 차 문화는 차(茶)와 선(禪)은 같다 라는 선다일여(禪茶一如)정신으로 승화 되는 긴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다 이조 말 다산(茶山)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대흥사 일지암에 은거하던 초의선사를 만나고 초의선사가 추사 김정희와 교유하면서 우리의 차 문화는 차의 본산인 지리산 일대에서 벗어나 일약 획기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동다송(東茶頌)과 차신전(茶神傳)을 집필한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자연주의와 실질주의에 근간한 선다(禪茶)사상은 당시 성리학에서 벗어나 실학을 주창한 유학자(儒學者)들의 학풍과 상통(相通)한 것입니다.

차(茶)가 선(禪)을 만난다는 것은 비움(空)을 뜻합니다. 무소유이며 나 또는 너 입니다. 무리(衆)가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는 초라한 방, 나와 너가 이 빠진 찻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갓 따른 한국 전통차에서 올라오는 김 속에 흐르는 차 향(香)과 함께 고요히 차를 음미(飮味)하는 모습이 선다(禪茶)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유한 차 문화입니다. 같은 색 같은 디자인의 화려한 한 옷을 입은 많은 다도회 회원들이 각종 다구, 다기 들로 호화롭게 장식된 다실에서 절차 복잡하게 청나라 황제가 마셨다던 비싼 중국차를 마시는 모습은 일본식 차 문화를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Copyrights ⓒ 빅토리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