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

<문학회 글>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

한상영 소설가/문학평론가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40년대 50년대를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은 전쟁의 현장에서 지극히 힘들고 고달픈 시절을 보냈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강압과 수탈로 인해 식량과 물자가 부족했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 없이 각자 도생해야 되는 시기였습니다. 625전쟁 때는 가정을 버리고 피난 다니느라 거의 구걸하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 왔을 땐 삶의 터전이 모두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 전후 복구를 책임진 이승만 정부는 민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박정희 할머니는 그 시대에 어머니로 살아온 많은 사람들 중의 한 분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분은 2000년대 이후의 어머니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93세까지 사셨습니다

사범학교를 나와 여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가난한 의사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20년간 유치원 원장을 맡았으며 글과 그림에 재능이 있어 육아일기를 써서 출판을 하였는데 그림을 곁들인 빛 바랜 육아일기는 KBS에서 방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수채화 협회 공모전에 수차 입선및 특선을 했고 여러 차례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으며 역시 수채화가인 큰 딸과 모녀전을 갖기도 했습니다. 1997년 장애인의 날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습니다.

흔히 이런 화려한 경력때문에 사람들이 이분을 존경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분을 아는 모든 이들은 이분을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 가려면 종업원에 의해 쫒겨 날 정도의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쓴 육아일기는 할머니가 되어서 쓴 것이 아닙니다. 1945년 일제에서 해방 되던 해에 출산한 첫 딸을 위시해 1955년 태어난 막내 아들까지4녀 1남을 키우면서 틈틈이 쓴 일기입니다. 시집 갈 당시 미 장가간 시동생들 포함하여 9명의 식구들의 의(衣)와 식(食)을 힘들게 감당하면서도 시간을 쪼개고 채워가며 데생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고 육아일기도 썼습니다.

버들 강아지에 물기가 오르고 아지랑이 나른한 이른 봄 대동강으로 빨래를 하러 갔던 새댁은 은사시나무 새싹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을 봅니다. 아! 아름다운 세상, 벅차게 밀려오는 환희를 주체할 수 없어 눈물이 절로 납니다. 빨래통을 내려 놓고 수채화 한장을 그립니다.
이 분은 눈물이 있는 화가였습니다. 맹인들을 위한 한글 점자 창안자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일생 맹인들의 누이로 산 마음이 따듯하고 사랑이 충만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한국 맹인점자도서관 건립을 위해 수채화 전을 열고 수익금 전액을 기증하였고 일생 동안 그 도서관에 매월 쌀 한 가마니 씩 후원하고 수채화 그리기를 지도해 왔습니다. 카나다 토론토에서 한국 카나다 맹인 후원회의 기금 마련을 위한 수채화 개인전을 여는가 하면 안구기증협회에서 주관하는 사후 안구기증운동 사업과 홍보를 위해 연 ‘빛나눔 사랑전’의 판매 대금 전액을 기증했습니다. 또한 노동부가 주관하는 노동자 미술 전람회에도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이분 주위엔 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자와 맹인들을 비롯하여, 위로 받고 싶은 사람, 아픈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따듯한 마음으로 이웃이 되어 줍니다. 이분은 돈 주고 산 비싼 물건이 아닌 본인이 직접 만들어 마음이 깃들어 있는 물건을 선물합니다. 아이들의 옷도 직접 만들어 입히고 자식들의 결혼에 혼수로 가장 기본적인 것만 준비합니다. 대신 자식들과 교제하여 결혼한 사위들에게 자신의 딸과 연애한 기간 옆에서 보고 들은 바 직접 쓴 연애기를 선물하여 사위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자녀와 조카들을 데리고 산과 들과 바다로 노래 부르고 춤추며 화판을 끼고 그림을 그리러 다녔으며 밤마다 수를 놓고 뜨개질을 하고 글짓기를 하거나 그림책을 만들고 주말에는 하모니카나 실로폰, 트라이 앵글 등으로 합주,독창 대회, 중창 대회를 하고 년 말에는 방 한쪽에 무대를 만들어 가족 연극도 하며 가정을 신나고 즐겁게 꾸려 갔습니다

50년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표지, 그 속에 담겨 있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의 표현들. 크레용으로 색색이 칠해진 삽화, 자식들이 유명한 사람, 자신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이웃에 빛이 되길 원한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를 읽고 그냥 기뻐서 방송을 결심했던 KBS PD는 말한다. “이 육아일기는 ‘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자식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에 대한 해답이고 훌륭한 교과서라고”.

집에서 가족들에게 따듯한 밥을 준비하고 뒷바라지 하는 수고를 족쇄나 불평등으로 인식하는 사람들, 태반 주사, 신데렐라 주사를 맞으며 고급 병원 Spa에 누워서 세월을 흘리는 사람들,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호화로운 저택 Sofa에 앉아서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은 많은 다른 사람들이 어째서 박정희 할머니를 존경하는지 알 수 있을까?

** 참고로 박정희 할머니의 둘째 따님인 유현애 권사님(한인장로교회)이 이곳 빅토리아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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