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는

<문학회 시> 뜰에는

봄비가 내리고
숨 죽여있던 온갖 생명들이
손을 뻗어 흙을 밀어내며 태양에게 손짓했지
생육의 햇빛을 사모하여

넝쿨 장미 줄기가 죽은 대추나무에 기대어 설레는 빛깔으로 꽃피우는 때
비바람과 천둥과 번개가 생명들의 희망을 질투하니
호박벌은 호박꽃 속에 숨고, 여치와 매미는 노래를 멈췄으며
거미는 사냥 대신 진주들을 모았지
어떤 생명은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다른 생명은 휴식을 갖는동안
거기에는 여전히 생장의 에너지가 충만했지

생장의 피로함을 쉬고
땅을 향해 머리 숙여 자신의 근원을 살필 때
메마른, 숨이 멎은 듯한,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거기에는
황금빛 성숙이 물결치고 있을 뿐
사랑을 부르는 소리조차 없었지.

고독한 성숙의 들녘에
바람에 울렁거리는 갈대 수풀사이로
파리한 오솔길이 나 있어
성숙은 미간을 모으고 먼 곳을 응시하며 간다
그 뜰에는
회심의 바람소리와 우주와의 일체를 꿈꾸는
잔잔한 춤사위가 있어라.

이승원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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