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주, 캐나다 연방 여섯번째 주로 가입

BC주, 캐나다 연방 여섯번째 주로 가입

<기획: BC주-빅토리아 역사 알기 3>BC주 역사 ②

1867년, 캐나다주(온태리오와 퀘벡주)와 뉴브런스윅주, 노바스코시아주 등 3개 주(오늘날 기준 4개 주)가 연방을 이룬다는 내용의 British North America Act가 영국의회를 통과, 그 해 7월1일 캐나다연방(Dominion of Canada)이 탄생한다. 해마다 7월1일에 캐나다 자치를 기념하는 Canada Day(처음에는 Dominion Day)가 바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이다.

당시 보수파를 이끌었던 존 맥도널드는 새로 새워진 이 나라를 ‘캐나다왕국(Kingdom of Canada)’이라고 부를 것을 주장했으나, 나라 이름에 ‘왕국’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식민지관리청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가 강하게 풍기는 ‘영지(Dominion)’를 사용하기로 결정된다.

BC주 연방가입으로 동서통합 이뤄

BC주가 캐나다연방에 가입한 것은 그로부터 4년 후인 1871년, 지금으로부터 147년 전이다. 시대를 잠시 거슬러 올라가 그 즈음 빅토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아보자.

헛슨베이사(HBC)가 Fort Victoria를 세운 해가 1843년. 그 후 1849년에는 빅토리아에 수도를 둔 Vancouver Island Crown Colony가 밴쿠버섬에 세워지고 그 운영권이 HBC에게 위탁된다.

프레이저 협곡에 골드러시가 일자 순식간에 2만 명이 넘는 광부들이 금광을 찾아 빅토리아를 거쳐 프레이저강으로 몰려든다. 이에따라 인구가 부쩍 늘어난 본토 로워메인랜드에 British Columbia Crown Colony가 들어선다. 이 때가 1858년으로 이것이 BC주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지난 호에 설명한 바 있다.

밴쿠버섬과 프레이저 밸리에 각기 세워진 두 개의 왕실식민지가 1866년 British Columbia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통합된 다음 해부터 빅토리아에서는 Amor De Cosmos, John Robson, Robert Beaven 등이 중심이 돼 BC주의 캐나다연방 가입을 한 목소리로 주창한다. 이들이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내건 명분에는 BC주가 자칫 미국에 합병될 우려가 있다는 점, 인구폭증에 따라 주정부의 부채규모가 크게 늘어난 점, 주민들에 대한 정부기관의 행정지원이 절실한 점, 골드러시가 끝남에 따라 경제침체가 우려된다는 점 등이 포함되어 있다.

BC주는 마침내 1871년 7월20일, 연방정부가 태평양철도(CPR)를 빅토리아까지 연장해주고 BC주의 부채 전액을 떠안는다는 조건으로 연방에 가입한다. 이렇게 해서 BC주는 캐나다 연방의 여섯 번째 주가 된다.

그 후 광산업과 목재업, 농업과 어업의 발달과 함께 BC주 인구는 꾸준히 늘어난다. Kootenay지역과 프레이저협곡, 카리브지역에서는 광산업이 성행하고, 프레이저강 유역의 비옥한 땅은 잘 훈련된 농부들을 불러들인다. 목축업자들과 과일재배 농가들은 톰슨강 유역과 카리부지역, 칠코틴지역과 오카나간 등지로, 목재업에 관심이 큰 사람들은 경제성 큰 숲이 울창한 서부 해안의 온대우림지역으로 몰려든다.

연방정부는 약속대로 1880년 Yale에서 동서로 뻗는 철도연결 공사를 시작, 1885년 밴쿠버까지 대륙횡단 철도가 연결된다. 이를 계기로 서부의 풍부한 자원을 동부로 실어 나르기 위한 철도산업이 활기를 띄면서 이 지역에 커다란 경제 부흥이 일어난다.

목재집산지 그랜빌 지역(밴쿠버 버라드 내해 입구)에 태평양철도의 서부 종착역이 들어서고 이듬해인 1886년에는 밴쿠버가 마을로 공식 출범한다. 현재 인구 250만 명의 BC주 최대 도시 밴쿠버가 작은 마을로 시작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130여 년 전이라는 것이 믿기 어렵다.

이 지역의 활발한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밴쿠버항까지 완성되자 밴쿠버는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발전에 성장을 거듭한다. 당시의 백인 정부는 원주민(First Nation People) 소유의 땅과 천연자원에 대한 소유와 거래에 관한 권리를 징발하는 등 행정권을 확대해나간다. 작은 마을로 시작된 지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밴쿠버는 위니펙을 제치고 서부캐나다 최대 도시로 급성장한다.

전후 복구로 중흥기 맞아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벌목과 철도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투입된 중국과 일본 노동자들이 크게 늘자 이들은 지배층을 이루고 있는 백인들의 심한 반목과 질시의 대상이 된다. 1871년 인구센서스 당시 BC주 전체 인구 33,586명 중 중국인이 약 3천 명으로 인구의 9%를 차지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들 중국 노동자들의 과다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소위 인두세(Head Tax)라 불리는 세금이다. 인두세는 1885년 1인당 10~50달러로 시작했으나 훗날 500달러까지 인상된다. 당시 500달러는 이들 노동자의 2년 분 급여에 해당되고 몬트리올에 집 두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큰 돈이었다고 한다. 1887년과 1907년에는 이들 아시아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인 폭력이 자행되기도 하는 등 아시아인들의 초기 BC주 정착은 극심한 차별을 받는 등 그 과정이 매우 험난했음을 기록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BC주의 성장은 지속돼 1914년에는 BC주 북중부 옐로우헤드 패스에서 프린스 조지, 프린스 루펏까지를 잇는 두 번째 대륙횡단 철도 Grand Trunk Pacific(GTP)이 개통된다. 이 철도 개통으로 Bulkley Valley지역에 경제적 활기가 더 해지고 모피거래 중심이던 이 지역 경제도 목재업과 농업, 광산업으로 까지 확대된다.

1920년대 후반 경제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강타하자 BC주 경제도 덩달아 곤두박질 친다. 설상가상으로 캐나다의 다른 지방에서 추위를 피해 밴쿠버로 몰려든 이주민 수가 수만에 달해 밴쿠버의 폴스 크릭(False Creek)과 버라드 인렛(Burrard Inlet) 기차역 일대는 순식간에 거대한 빈민촌으로 변한다. 생존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로 무장강도가 활개를 치고 치안유지를 위해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극심한 혼란과 공황상태가 1930년대 말까지 이어진다.

1940년대 들어 차츰 치안이 안정되고 경제가 회복될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BC주는 이 전쟁을 계기로 빠른 속도로 불황에서 벗어나면서 경제 중흥의 가속페달을 밟는다.

엑스포-동계올림픽, 재도약의 계기로

전후 20여 년간은 BC주가 경제적 부흥을 이룬 황금기에 속한다. 이 때는 특히 목재산업과 광산업, 오일과 개스 등 에너지 부문 호황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성취한 시기다.

1945년 주 총리 재선에 성공한 John Hart 자유당 대표는 과감한 인프라 구축에 나서 프린스 조지와 피스 리버 지역을 잇는 소위 John Hart Highway를 건설한다. BC Hydro와 BC Ferries가 출범하고 수 많은 다리와 댐, 고속도로가 건설된다. 대대적인 도로포장이 이루어진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밴쿠버와 빅토리아가 문화의 중심지로 우뚝 서고, 관광업체가 다투어 문을 열고, 패전의 상처가 치유된 일본 등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의 경제적 교류가 크게 확대된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중반에는 코퀴할라 하이웨이가 건설되고 1986년에는 밴쿠버엑스포가 개최돼 또 한번 BC주 도약의 계기가 된다.

2001년 실시된 선거에서 신민당(NDP)을 꺾고 우잘 도산지 총리에 뒤이어 주 총리직에 오른 자유당(BC Liberal Party)의 고든 캠블은 주의회 79석중 77석을 싹쓸이하면서 집권과 동시에 빠른 페리 정책, 소득세 인하, BC철도 매각 등의 변화를 과감하게 추진해 나간다. 그는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구속되는 등 한 때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2005년 선거에서 무난히 재집권에 성공한다.

캠블 총리는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등의 업적에다 운까지 따라 몇 년째 경제호황과 재정흑자가 지속되는 등 안정적인 집권기반 속에서 꾸준한 인기를 유지했으나 여론을 무시하고 도입한 HST에 발목이 잡혀 2011년 3월 크리스티 클락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주고 퇴진한다.

캠블에 이어 35대 총리에 오른 클락은 작년 5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과반에 딱 한 석이 부족한 43석을 얻는데 그쳐 각 41석과 3석을 얻은 존 호건의 신민당과 앤드루 위버의 녹색당 연합군에 정권을 넘겨주면서 16년간의 자유당 집권은 그 막을 내리게 된다.

BC주 개요

수도 빅토리아 (인구 39만)
최대도시 밴쿠버 (인구 250만)
공용어 영어 (사실상)
주총독 Janet Austin (30대)
주총리 John Hogan (BC NDP, 36대)
주의회 총 87석 (NDP 41, Greens 3,
Liberal 42, 무소속 1)
하원의석 42석(총 338석 중)
상원의석 6석(총 105석 중)
연방가입 1871년7월20일 (6번째)
면적 944,735평방km (5위)
인구 486만명 (전국 3위)
인구밀도 5.02명/평방km
GDP C$2,500억 (4위)
1인당 GDP C$53,267(8위)
website www.gov.bc.ca

BC주 탄생 관련 주요 연대기

1778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 눗카 사운드에 상륙. BC주 땅에 첫발을 디딘 백인
1788 Frances Barkley, 찰스 바클리 선장의 부인으로 BC주에 상륙한 첫 백인여성
1790 10월28일, 영국과 스페인 눗카사운드 통치에 관한 Nootka Convention 체결
1792 8월28일, George Vancouver 선장 눗카사운드에 상륙
1793 7월22일, Alexander McKenzie, 육로로 태평양까지 캐나다대륙 횡단에 성공한 첫 백인
1808 5월, Simon Fraser와 24명의 모험가 4척의 카누 타고 프레이저강 탐사
1843 3월15일, 헛슨베이사 빅토리아에 Fort Victoria 설립, 훗날 빅토리아로 성장
1846 6월15일, 북위 49도 기준 미국과 캐나다(영국식민지) 경계 획정
1849 밴쿠버섬에 Vancouver Island Crown Colony 선포
1857 프레이저강 하류에서 금광 발견, 그후 8년간 세계 도처에서 2만5천명 입국
1858 11월19일, Fort Langley에서 Colony of British Columbia 창설
1859 뉴웨스트민스터가 브리티시 컬럼비아 수도로 지정
1866 8월, 밴쿠버섬과 BC식민지 통합, 뉴웨스트민스터에 수도
1868 4월2일, 빅토리아로 수도 이전
1871 7월20일, BC주 Dominion of Canada의 6번째 주로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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