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자리, 선택한 자리

<문학회 수필> 타고난 자리, 선택한 자리

박상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연어 낚시 통신> 저자, 정원사, 빅토리아문학회 회장

7년 만에 밴쿠버를 다시 찾은, 이젠 환갑이 다 된 그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바다를 건넜다. 이민 생활 11년 만에 대중가수를 보기위한 나들이는 처음이다. 레이디 가가나 브루노 마스, 심지어 밥 딜런이 밴쿠버에 왔을 때도 꿈쩍 않던 우리 부부였는 데 그의 공연은 꼭 보고 싶어서 였다.

한국에 사는 지인이 마련해준 좌석은 고맙게도 무대와의 거리가 채 20미터도 안 되는 좋은 자리였다. 막이 오르자 밴드 한 가운데 환한 조명을 받으며 그가 서 있었다. 객석의 환호성과 함께 시작된 공연.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젊은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었고, 직접 연주하는 통 기타 소리와 정감 어린 목소리만으로 큰 무대를 가득 채워 놓기도 했다. 나와 아내는 그가 신나는 노래를 부를 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고 잔잔한 노래가 끝난 뒤엔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다.

노래 몇 곡을 연달아 부른 뒤 숨을 고르며 그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보러 와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 였다. ‘별밤지기’로 다져진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극장 안을 포근하게 감쌌다. 의례적인 인사이겠지 하며 듣고 있던 나는 이어진 그의 파격적인 제안에 깜짝 놀랐다.

“여러분들께서 양해해주시면, 객석 맨 뒷줄에 앉아 계신 분들께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어려운 걸음을 하셨을 저 고마운 분들을 공연이 끝난 뒤 따로 모실까 합니다. 저와 다과를 함께하며 포옹도 하고 사진도 찍어 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공연에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한 VIP석 관객이 아니라, 무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 맨 끝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택했다. 초대 받은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한결같이 그의 아름다운 뒤풀이 제안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해줬다.

다시 이어진 공연은 세 시간을 꼬박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표를 구해준 지인의 도움으로 우리 내외도 그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몇 가지 쿠키와 컵케이크 그리고 음료들이 놓인 테이블 위에 소담한 장미 꽃 병이 놓여있었다. 이윽고, 검정 가죽 재킷을 입고 나타난 그가 서른 명 남짓한 특별한 팬들을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살다 보면 이런 반전의 시간도 있어야 되지 않겠 어요? 그래야 삶의 활력이 생기는 법이죠.”

그를 가까이서 마주한 팬들의 얼굴은 테이블 위에 환하게 피어 있는 장미꽃보다 더 밝았다. 그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둘러보던 가수는 “앞자리만 차 있었더라면 여기에 오고 싶어도 못 왔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3등석, 그것도 맨 뒷좌석을 채워준 관객들 덕분에 자신의 공연이 가능했다는 가수.

“어느 공연이든 맨 뒷자리는 생기는 법인데, 저는 늘 그분들이 마음에 쓰입니다. 5만석이든, 천 석짜리 공연이든 마찬가지죠. 그분들을 관통하지 못한 공연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대를 준비할 때면 항상 조명, 음향, 제스처 등 모든 것을 맨 뒷자리에 맞춰 준비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맨 앞자리에 앉게 된 사람들, 주어진 자리이기에 당연히 누려야하는 줄로만 아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들에게서 배려와 나눔의 미덕을 기대하긴 점점 힘들어진다. 오히려 자신의 부와 권력의 크기를 뽐내기라도 하듯,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갑질’을 일삼는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비인격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이다.

어쩔 수 없이 맨 뒷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준 별밤지기. 그의 마음 씀씀이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다.

 

Copyrights ⓒ 빅토리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