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성취

<문학회 수필> 사랑의 성취

엘리샤 리 수필가, 화가/빅토리아문학회 회원

“난 당신을 아직도 못 잊고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언제 그 여자를 사랑하기나 했었나? 당황스런 그가 집에 와 곰곰히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그녀가 결혼하기 전에 자기에게 사랑의 고백을 한 적이 있음을 기억해 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없었던 그가 수 년이 흐른 후에 그녀의 진한 사랑의 고백을 다시 한번 듣고 나서 마음 문을 열기 시작했다. 얼마나 자기를 사랑했으면 아이 둘을 낳고도 자기를 못 잊나 싶어 그녀를 그녀의 결혼 담장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 버렸다. 어린 나이의 무지라고나 할까. 결과를 알게 되면 그는 감히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 좋고 학벌 좋은 남편과 아들 둘 낳고 잘 살던 그녀가 사랑의 열병을 식히지 못하고 기어이 어린 시절 흠모하던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녀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육십을 갓 넘기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늘 고독했고 남편으로부터 자상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언제나 고립된 삶 고독한 시간 속에서 살다 떠났다.

그 남자는 그 여자의 옛 남편의 방해로 직장에서 여러 번 해고 당하고 결국에는 캐나다 이민 길에 올랐다. 유능한 실력을 나타낼 수 없는 이민 1세의 실정, 그도 힘든 이민자의 생활을 하면서 ‘이 여자가 내 인생의 발목을 잡았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그의 삶 역시 침울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내 아는 사람 가운데 이런 경우도 있다.
미국 산호세에 사는 한인 가정상담사가 어려움에 처한 한 여인과 상담하다가 그 여인을 돕는 마음이 연정으로 변했다. 영주권이 없는 그녀를 돕기 위해 아내에게 간청하기를, 당신과 내가 이혼해서 내가 홀로되어 그녀에게 서류상으로만 결혼시켜서 영주권을 받아 주고 싶다, 그 다음 다시 당신과 결혼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가 펄쩍 뛴 것은 당연했지만 남편이 자신을 그렇게 못 믿느냐며 매일 볶아대는 바람에 아내는 할 수 없이 허락한다.

그 이후 이 남자는 아내와 법적으로 이혼하고 정식 절차를 밟아 상담녀의 남편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상담녀가 영주권이 해결 된 후에는 이 남자가 아내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의 양심은 있었는지 한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은 첫 아내의 집에 와서 잠을 잤는데 의사인 아내는 늘 마취재를 담은 주사바늘을 베게 밑에 숨겨두고 있었고 그녀를 배신한 남편을 용서할 수 없어 남편이 잠 잘 때 죽일 생각에 사로 잡혀 있곤 했다.

이렇게 힘든 삶의 메들리 속에서 결국 의사 아내는 남편을 포기했고 이 남자는 새 여인과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 이 남자는 나이 많아 늙었고 아직도 팔팔한 새 여인은 이제 늙어 쓸모 없어진 남자가 귀찮아진다. 미국에 살 때 내가 잘 아는 분이 우연히 이 남자 얘기를 하기에 깜짝 놀랬다. “당신이 이 분을 아느냐?” “그럼요.” “아직도 그 새 여인과 사느냐?” “네, 그러나 이제는 그 여인이 늙어버린 할아버지가 귀찮아서 떨쳐버리려고 전화도 받지 않아요. 방금 그녀와 헤어졌는데 울리는 전화를 끊기에 누구냐고 물으니 바로 그 할아버지라고 해요. 지금 그 분은 첫 번째 아내에게 되 돌아갈 수 없는 처지이며 또한 이 젊은 여인으로부터는 구박 당하는 신세가 됐지요.”
아이러니컬 하게도 자신이 가정상담사의 일을 하면서도 본인의 삶은 다스리지 못한 예다.

오래 전에 소설과 영화로 우리에게 감명을 준 ‘메디슨 카운티 다리’를 기억할 것이다.

나흘 동안 불태웠던 사랑이 아쉬워 주인공 로버트는 떠날 즈음 “프란체스카, 이런 건 오직 한 번 뿐이오. 몇 번의 생을 산다고 해도 이런 사랑, 이런 느낌은 다시 없는 법이오.”라며 간청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안정적인 생활과 사랑 중에서 갈등하다가 도망가기 위해 싸놓았던 가방을 다시 풀고 결국 현재의 생활을 택한다.

그리고 죽을 때쯤, 평생 동안 가족에게 충실했으니 죽어서는 로버트를 택하겠다면서 ‘그와 즐겼던 로즈먼 다리(메디슨 카운티의 실제이름) 아래에 자기의 재를 뿌려달라’고 유품의 마지막에 적어놓았다.

현재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 집을 지켜왔기 때문에 프렌체스카는 로버트와의 나흘간의 사랑을 남은 일생 동안 간직하면서 살아왔던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에게 남겨진다.

위의 세 경우를 종합해 보면 진정한 사랑의 성취는 소유가 아닌 간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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