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람들

<여행기>길 위의 사람들

풍향 서희진
(시인/빅토리아문학회 회원)

<3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2>

어느 누구나 할 것없이 시간이 나면 일상을 벗어나 힐링을 하고 싶어 떠난다. 비록 장소만 바뀐 거라 할지라도 떠남과 함께 느림의 미학을 몸소 느끼며 돌아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천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온 길, 해마다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는 길, – Camino de Santiago – 사전적 의미로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다.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3대 그리스도교 순례길이기 때문이다. 199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 길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걸은 후 1997에 발표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에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이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한다는 의미가 중세 유럽의 가톨릭 전통에 그치지 않고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로 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동행이 있어도 혼자 걷는 것과 같다. 그렇게 걷다보면 길이 내게 물어오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때부터 나를 만나기 시작하고 타인도 만나진다.

결국은 남는 것은 사람이었다.

파리에서 3년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혼자 순례길에 오른 현희씨 (22살)는 매일 일기를 썼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일기장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이 길 위에서 과연 일기장을 찾을 수 있을까..걱정을 했는데 한국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있어서 다행히 찾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현희씨의 일기장에는 무엇이 씌어있을까?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이 긴 길을 완주했음을 보여주고 싶은 임동수 미카엘씨 (82세), 몸 뿐 아니라 얼굴도 동안인 그는 5,60대 못지않게 꼿꼿한 걸음걸이여서 누구도 80대라는 걸 믿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 왔다는 선박 설계사 리처드 (샌프란시스코 출신, 61세)는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고자 했다. 평생 배만 설계하다보니 자신의 인생도 새롭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대화가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어떤 까페에서 다시 만났을 때, 하모니카보다 작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악기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악기를 만든 것이다. 그처럼 미카엘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순례길 첫 날에 만났다가 37일 후,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난 로라 (독일, 42세)는 너무 핼쓱해져서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걸으면서 많이 아팠다고 했다. 왜 아팠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순례길에 오르기 몇 달 전,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로라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과 아픔을 주냐고 신에게 따지고 싶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누구한테도 자신의 억울함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순례길에 올랐다고 했다. 세상을 떠난 딸, 자신의 마음에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딸과 함께 순례길을 걸었으니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왜 아팠냐고 물을 수 없었던 거였다. 산티아고에서 다시 본 로라는 첫 날 만났을 때보다 핼쓱했지만 평온해보였다. 혼자 걷는다는 것이, 순례길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걸까?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온 댄 (64세)은 뇌졸중으로 몸 한쪽이 불편했다. 그런데도 하루 걷는 양을 채우기 위해 점심도 먹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몸 어디도 불편하지 않은 우리가 까페에서 점심에 곁들여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도 댄은 불편하고 느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선지 항상 우리보다 먼저 숙소에 도착했다. 댄을 보며 우리는 ‘토끼와 거북이’를 떠올렸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그의 뚝심과 성실함..! 삶도 결국 그래야하는 거 아닐까? 속도보다는 성실..!

17살 딸과 함께 온 안드레아 (콜롬비아, 44살)는 3년 전에 혼자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 후 가족과 함께 걷고 싶어 이번에는 딸과 동행한 것이다. 3년 전, 순례길에서 무엇을 얻었길래 딸과 함께 온 걸까? 그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800킬로미터 가까운 긴 길을 부녀가 함께 걸으며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떤 길을 걸어야할까? 그런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짐작해본다.

함께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늘 같은 속도로 걷는 건 아니다. 40대 아들과 함께 온 70대 여인 제시카는 아들과 걷는 속도가 달라 숙소에서만 만난다고 했다.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길 위에 있을 뿐 물리적으로는 떨어져서 걷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제시카는 어쨌든 같은 길 위에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과연 우리 두 아들과 함께 올 날이 있을까?

이 사람들 외에도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밝은 사람도 있었고 어두운 사람도 있었다. 건강한 사람도 있었고 어딘가 아픈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목적지만 향해 걷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주변 풍경에 정신을 팔며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었다. 걷는 방식과 속도는 다르지만 그 길 위에 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밀밭길과 포도밭길, 그리고 목초지를, 800키로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걸을 수 있었던 건 딱 오늘 하루만 걸을 생각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 말이다.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러나 잃어버린 것들, 또 나를 울고 웃게 했던 것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아련하게나마 무엇이 나를 살게하는가를 절실히 느꼈다. 그 느낌은 모든 순례자가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말했다. “모두가 괴로움에 다같이 시달린다는 사실만 깨닫는다면 구원이 온다”고..! 그의 말처럼 누군가의 기쁨을 질투없이, 진정으로 함께 누릴 수 있게 된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 될 거라 생각한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여정이 끝났듯이 우리네 인생도 언젠가 마칠 날이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만 무사히 잘 걸으면 됐다고 생각했던 순례길에서처럼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오늘 하루만 생각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하루가 주어질 때마다 나 자신을 성찰하고, 성찰 속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걷는다는 건 자신의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 타인을 통해 나를 알게된 것처럼 길은 곧 인생이자 스승이었다. 그래..! 더 나은 나를 꿈꿔보자. 그래서 다시 태어남을 거듭하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나의 형상을 다듬는 일을 멈추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다.

다시 그 길 위에 서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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