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길”

<여행기> “나를 만나는 길”

<3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1>

풍향 서희진
(시인,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몇 해 전에 다녀온 동생이 늘 권유했지만 워낙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엄두를 보내고 있다가 7년간 운영해온 비즈니스를 접고부터는 내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드디어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성지순례를 많이 갔다. 갈 때마다 든 생각은 성지순례는 그냥 여행과는 달리 내 뜻만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떠나기 몇 주 전부터 짐을 챙기고 준비하다가 출발 하루 전 7kg로 줄였다. 핸드백 하나 달랑 들고 다녔던지라, 커다란 배낭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파리에 도착해보니 철도노조가 파업 중이어서 본의 아니게 사흘이나 파리에서 보내야했다. 그 후 바욘 (Bayonne)까지는 기차를, 바욘에서 다시 순례자들로 가득한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 도시인 생장 피에드포르 (De 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에 가서 순례자의 증표인 가리비를 받았다. 가리비가 순례자의 증표가 된 이유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걸은 성 야고보의 주검이 가리비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가리비를 배낭에 매달고 순례자 전용 여권이라고 할 수 있는 크레덴시알 (credencial)을 받자 마음가짐이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꺼질 듯한 장대비가 내렸다. 그것도 40분이나.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마주하니 그동안 내 안에 쌓였던 것들이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후련함과 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명력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구나” 그런 마음이었다고 할까? 그런 마음으로 피레네 산맥에 올랐다.

첫 번째 도착한 숙소는 오리송 알베르게..! 알베르게는 순례자 전용 숙박시설로 순례자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순례길의 첫 알베르게인 오리송에서 50여개 국에서 온 60여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왜 이 길을 떠나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60가지 이유가 있었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삶의 궤적과 이 길을 떠나온 이유, 심지어 종교도 다른 60여명이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웠다. 종교에 의해 만들어진 순례길이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더운날 오르막길을 만났다. 힘겹게 올라간 정상에서 뜻밖에도 순례자들의 조각상을 만났다.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조각상이 있을 수 있을까? 놀라웠다. 알고 보니 빈센테 갈베테라는 조각가가 ‘당나귀를 타고 가는 순례자’라는 제목으로 열 두명의 순례자를 조각했다는 것이다. 그 작품을 보는데 문득 오래 전에 알고 지낸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음에서 지워졌던 그가 조각상을 둘러보는 사이 다시 기억나면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렇게 언덕길을 내려온 후에 비로소 알게 됐다. 그 언덕의 이름이 ‘용서의 언덕’이라는 것을..! 단순한 산책길이 아니라 영적인 성장을 꿈꿨던 성인을 찾아가는 길, 길 끝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 힘든 길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걷기 시작한 이 길에서 받은 최초의 선물이었다. 용서의 언덕..! 그 곳에서 느낀 영혼 깊은 따스함과 평온을 다시 한번 갖게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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