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 전부터 원주민 살아오던 평화의 땅

1만년 전부터 원주민 살아오던 평화의 땅

<기획: BC주/빅토리아 역사 바로 알기 2> BC주 역사 ①

올해는 BC주가 탄생한 지 160주년이 되는 해다. 빅토리아와 BC주가 어떤 곳이며,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역사의 현장을 소개히고 있는 본지는 빅토리아 역사에 이어, 이번에는 6일 BC데이를 앞두고 우리가 살고 있는 BC주의 역사를 2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주>

BC주 기

캐나다 서쪽 끝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BC주는 북으로 유콘주와 노스웨스트 준주, 동으로 알버타주, 남쪽은 미국의 워싱턴주, 아이다호주, 몬태나주와 접경해 있다. 미국과의 국경은 1846년 체결된 오리건협약(Oregon Treaty)에 따라 그어진 것이다.

총 면적은 94만4,735평방 킬로미터. 프랑스와 그 크기가 비슷하고, 워싱턴주, 오리건주, 캘리포니아주 등 미 서부 3개 주를 합친 것보다 크다. 한반도의 4.3배, 남한의 9.5배 크기다.

태평양에 연해 있는 비씨주 해안선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굴곡이 많은 피요르드식(Fjord: 氷蝕谷) 해안이다.

수심 깊은 바다가 경사 심한 산자락과 맞닿아 있는 해안선의 총 길이는 2만7천km가 넘고, 6천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해안선을 따라 점처럼 흩어져 있다. 이들 섬 대부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서쪽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코우스트산맥과 알버타주와 경계를 이루는 록키산맥 그리고 내륙 깊숙이까지 파고든 내해(Inlet)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산이 많아 주 전체 면적의 75%가 해발 1,000미터(3,280 피트)가 넘는 고산지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면적의 60%는 울창한 숲으로 뒤 덮인 삼림지대이고, 경작지는 주 전체 면적의 5%에 불과하다. BC주 서부와 밴쿠버 섬 서해안은 칠레, 뉴질랜드. 호주 타스마니아섬 등과 함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온대우림(溫帶雨林: Temperate Rainforest)지대. 반면 중동부 내륙이나 북쪽은, 기후가 온화한 밴쿠버섬이나 서부해안지대와 달리,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리고 기온이 낮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다.

주의 수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구 39만의 빅토리아로 밴쿠버섬 동남쪽 끝에, 인구 250만의 캐나다 제3의 도시이자 비씨주 최대 도시 밴쿠버는 본토의 남서쪽 프레이저강 하류 로워 메인랜드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내륙에는 준 사막지대에 가까운 캠룹스와 오카나간 밸리의 켈로나와 오소유스가 있고, 북부에는 프린스조지가 있다.

주 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북쪽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삼림지대. 다만 록키산맥 북동쪽의 피스리버 지역 평원에 도슨 크릭, 그랜드 프레어리, 포트 세인존 등 몇몇 소도시들이 형성되어 있다.

18세기 후반 유럽인들 첫 발

Fort St. John 인근 비튼강 유역에서 석기(石器)시대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고고학자들은 비씨주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을 최소한 11,500년 전으로 추정한다.

지금부터 불과 240년 전인 1770년대까지만해도 북미대륙의 서북부지방(지금의 BC주)은 외부세계에 전혀 알려지기 않은 미지의 땅이었다. 드넓은 태평양과 험준한 록키산맥이 유럽 개척자들의 접근을 쉬 허락치 않았기 때문일 터.

눗카족(Nootka), 코스트 살리시족(Coast Salish), 콰콸라족(Kwak’wala) 등 이 지역에서 1만년이 넘게 평화를 누리며 살아오던 원주민들에게 낯선 손님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77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밴쿠버섬 서해안 눗카섬(Nootka Island)에 배를 대면서 부터다.

같은 해 콰드라 선장이 이끄는 스페인 탐험대가 역시 이 섬에 상륙하고, 1792년 8월28일 조지 밴쿠버 선장이 이끈 디스커버리호와 채텀호가 역시 이 섬에 배를 대면서 1790년 영국과 스페인간에 체결된 눗카컨벤션조약에 따라 백인들의 이 섬에 대한 지배권 행사가 시작된다.

눗카섬 지배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던 영국과 스페인은1793년 공동소유권에 합의, 해안 탐사와 지도제작 작업에 착수했으나 1795년 돌연 스페인 탐사선이 철수함으로써 스페인의 BC주에 대한 영향력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1793년에는 알렉산더 맥켄지경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태평양 연안까지 캐나다를 횡단한다. 지금도 Bella Coola 근처에는 ‘1793년 7월22일 알렉산더 맥켄지 육로로’ 라고 새겨진 바위기념비가 남아있다. 그후 맥켄지경 외에도 John Finley, Simon Fraser, Samuel Black, David Thompson 등이 이끄는 모피상 탐험대가 록키산맥을 넘어 대평원지역과 태평양을 잇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BC주에 백인들의 정착지가 세워진 것은 1794년 Fort St. John이 처음이다. 그 후 모피교역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Hudson’s Hope(1805), Fort Nelson(1805), Fort Saint James(1806), Prince George(1807), Kamloops(1812), Fort Langley(1827), Victoria(1843), Yale(1848), Nanaimo(1853) 등이 차례로 탄생한다. 이 외에도 미국 워싱턴주의 Fort Vancouver, Colville, Walla Walla 등에 교역소가 세워졌다.

1821년 몬트리올의 노스웨스트사와 런던에 본사를 둔 헛슨베이사 등 두 모피회사가 HBC로 합병되면서 현재의 BC주 지역은 크게 3개 관할구역으로 나뉜다.

중북부 내륙은 New Caledonia 지구로 Fort St. James에서, 톰슨강 남쪽과 컬럼비아강 북부 내륙은 Columbia 지구로 Fort Vancouver에서, 그리고 록키산맥 북동부 피스리버 지역은 Athabasca 지구로 Fort Chipewyan(현재의 알버타주)에서 각각 관리했다. 이 같은 관할 방식은 HBC 관리인들이 체계적인 통치조직 없이 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했던 1849년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미국의 서진정책이 추진되고 컬럼비아 지구 남부(현재의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에 대한 미국의 영토 지배력이 강화되자 1846년 캐나다와 미국은 북위 49도를 경계로 국경을 긋는 오리건협약을 체결하면서 북위 49도 이남 지역은 미국 영토가 된다.(밴쿠버섬과 걸프아일랜드 제외).

그 후 1849년에는 빅토리아가 밴쿠버섬 왕실식민지의 수도로 지정된다. 이와 함께 중북부 내륙을 관할하던 New Caledonia 지구가 그 관할권을 현재의 비씨주 전역까지 확장하면서 그 명칭도 British North America로 바뀌게 된다.

1858년 BC 왕실식민지로 공식 출범

1858년 프레이저 협곡에 골드러시 광풍이 불어 닥치자 금광을 찾아 몰려든 미국인 수가 폭증하면서 그 해 11월19일 메인랜드가 British Columbia Crown Colony로 공식 지정된다. 이것이 BC주의 원년이다. 이듬해 프레이저 강변 New Westminster에 수도가 들어선다.
1862년에는 Cariboo 지방에 제2의 골드러시가 일자 BC식민지 정부는 바커빌, 릴루엣 등지를 잇는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골드러시 붐이 급격히 시들해지면서 정부는 극심한 재정난에 빠진다.

때를 같이해 1849년 빅토리아를 수도로 세워진 Vancouver Island Colony 역시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하자 1866년 8월 영국의회는 이들 두 식민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칙령을 공포한다. 이때 빅토리아의 누구도 이 통합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뉴웨스트민스터에서도 통합선포식에 참석한 사람이 몇 명에 불과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통합과 함께 처음 수도를 뉴웨스민스터에 두었으나 2년후인 1868년 4월2일 빅토리아로 옮겨온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태평양 연안에 세워진 이 새로운 영지를 British Columbia라고 이름짓고 오늘에 이르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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