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와 무화과

<문학회 수필> 청설모와 무화과

박상현 작가/정원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연어 낚시 통신> 저자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뒤뜰 무화과나무에 올라선 청설모가 위태롭다. 벌써 며칠째 오르내리며 잘 익은 열매를 골라 따먹던 녀석이다. 어느새 자신의 몸을 지탱해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가지 위에 매달려 있던 열매는 다 먹어 치웠다. 이제는 가지 끝 쪽에 매달린 무화과를 손에 넣어야 한다.

불과 한 뼘 앞에 매달려 있는 농익은 무화과. 열 십자로 벌어진 열매 끝에 불그스레한 꿀물이 가득하다. 달콤한 냄새가 녀석의 코끝을 간질이는지 강아지풀 꽃 이삭처럼 몽실몽실한 꼬리를 연신 흔들어대며 안절부절못한다.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잠시 숨을 고른 청설모. 조심스럽게 앞발을 내디뎌보지만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속절없이 흔들린다.

나뭇가지는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데 허기에 내몰린 욕망은 미구(未久)에 닥칠 위험 따윈 안중에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안쓰러운 부조화다. 아슬아슬 매달려 있던 청설모의 몸이 기어이 아래쪽으로 쏠린다. 아찔한 순간이다. 화들짝 놀란 녀석이 뒷걸음질 친다. 좀 더 앞으로 나갔다가는 몸뚱이가 곤두박질 쳐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자각(自覺)이 생긴 덕이다.

위험 앞에서 포기는 신속했다. 다시 안전한 자세를 되찾기 위해 뒤로 물러서며 몸을 잽싸게 움직이자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던 나뭇잎들이 자지러지며 바스락거린다. 다행스럽게도 참화(慘禍)는 면했다.

과욕(過慾)이 화(禍)를 부르고 지나침이 모자람과 다름없다는 건 비단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선 청설모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공자(孔子)의 한 제자가 물었다.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누가 더 어진 사람입니까?”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스승의 대답을 듣고 다시 제자가 물었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것입니까?”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 기록된 논어의 구절이다. 청설모는 무화과 열매에 미치지 못했다. 다른 열매를 찾아 나서야 하는 수고가 불가피 했다. 그러나 지나친 모험을 결행한 끝에 나무에서 떨어졌다면 이 또한 불행한 결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탁견(卓見)이 아닐 수 없다.

청설모가 포기하고 돌아선 무화과에는 벌들이 날아와 꿀을 빤다. 배고픈 까마귀도 날아들어 쪼아 먹는다. 이들이 먹고 남은 것들은 땅에 떨어져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결국엔 흙 속에 스미어 무화과나무가 먹고 살 거름이 된다. 자연 속의 미물일지라도 이처럼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다.

청설모가 결코 넘지 않은 선(線). 위험을 감지할 줄 아는 지혜 덕에 청설모는 화를 면했고 그의 포기는 다른 생명들에게 먹이를 양보하는 미덕을 낳았다. 공존과 공생을 원한다면 그 선의 의미를 되새겨 볼만할 것 같다.

Copyrights ⓒ 빅토리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