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문학회 수필> 행복

한상영 소설가/문학평론가 빅토리아문학회 회장

언제 부터인가 집 처마 밑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요즈음이 새끼를 낳는 계절인지 새들이 번갈아 가며 새끼를 품더니 얼마 후 새끼들이 주둥이를 한껏 벌리고 어미가 물어 오는 먹이를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당에는 먼저 둥지를 떠난 새끼 새들이 어미와 아비의 보호를 받으며 종종거리며 돌아 다니는 귀여운 모습도 자주 보게 됩니다. 더구나 꽃 밭이나 채소 밭을 삽으로 뒤척일 때에는 어쩌다 밖으로 나오는 지렁이를 채 가려고 조심조심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새들은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마당을 돌아 다니며 흙을 쪼아 대는가 하면 산 속을 날아 다닙니다.

2년 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사파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National Park 내 뜨거운 햇볕을 가릴 양 큰 양산 모양을 한 나무가 군데 군데 서 있는 넓은 초원 위를 Wild Beast 무리와 얼룩 말 무리가 길게 떼를 지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움직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가한 모습을 유심히 지켜 보는 무리가 또 있습니다. 멀리 나무 그늘 아래 어미 사자 옆에 여덟 아홉마리 어린 사자가 한가롭게 서로 넘어뜨리고 엉키며 물고 덤비는 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온통 털로 덮혀 있으면서도 깨끗한 모습 때문에 절로 위엄이 느껴지는 덩치 큰 아비 사자가 조금 떨어진 전망이 좋은 곳에 앞 발을 길게 뻗고 앉아 언제 달겨들지 모를 침입자들로 부터 식구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미 사자는 졸린 듯한 표정이면서도 어쩌다 머리를 곧추 세우고 Wild Beast 와 얼룩말 무리를 유심히 지켜 보기도 합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사자가 달려서 그들을 쫒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가늠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 사정 거리 안에 들었다 하면 쏜살같이 달려 가는데 달리는 모습이 숨가쁜 야성에 비해 어찌 그리 유연할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앞 발을 번쩍 들은 어미 사자가 뒤쳐진 Wild Beast 한 마리 목을 물어 낚아 챕니다. 숨이 끊어 질 때까지 사정없이 물고 늘어 집니다. 뒤 쫒아 온 식구들이 모여 포식을 합니다.

그렇듯 동물들은 먹이를 찾아 헤메며 힘든 일생을 보냅니다. 더구나 인간에 의해 자연이 파괴 되면서 그들의 삶은 더욱 치열해 집니다.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사는 몇몇 종들은 멸종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인간에 의해 남획되는 종들도 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도 합니다. 그런 저들을 보면서 동물들에게도 행복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봅니다. 그 러나 먼저 인간은 진정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부터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원시 시대엔 인간도 먹이를 찾아 다니는 삶을 살았으니 동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모여 살기 시작하며 먹을 것을 생산하기 시작한 후로는 생존을 위한 험난한 삶에서는 벗어 났습니다. 더구나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업과 노력으로 생산량이 증가하여 잉여 식량을 저장할 정도가 되어서는 삶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거기서 지배자가 생기고 지배계급이 생기면서 불평등이 심화 됩니다. 힘의 논리로 피지배계층은 노동을 하지 않는 지배계층에게 종속되어 갑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피지배계층에게는 먹이를 찾는 삶이 원시시대 동물과 다름없이 치열해 집니다. 그러면 지배계층,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 왕조시대에는 계층의 차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였기 때문에 계층이동의 꿈을 꾸지 못하였지만 현재에는 하층민들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상류층이 되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아마도 하층민보다는 상류층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나 봅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와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돌아 보면 권력과 명예를 가진 지배층과 재화를 쌓아 놓은 부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좋은 예가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여자의 경우 입니다. 몇 백억에서 몇 조까지 거론되는 부나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명예를 가졌던 그들의 지금 모습을 보면 분명 돈과 권력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초호화 의료서비스 병원에서 여왕같은 대우를 받으며 태반이니 백옥이니 하는 미용주사를 맞던 행복했던 그 때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초최한 모습으로 법정을 오가는 그들에게서 그 어떤 아름다움도 행복도 찾을 수 없습니다. 말 한마디로 재벌들이 줄지어 바치는 몇 백억씩의 돈을 어떻게 숨길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때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국회에서는 그들의 돈을 뺏을 최순실 재산 환수법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은 권력의 정상에서 박근혜는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모 모두 반대자의 총에 맞아 비명횡사하고 부모가 남긴 부정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동생들과 폭력을 동원해 가며 싸움을 했던 그녀에게 어찌 행복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97세에 ‘ 백년을 살아보니 ‘ 라는 책을 낸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는 말합니다. <소유하기 위한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소유의 노예가 되어 정신적 행복은 누리지 못한다. 또 더 많은 소유와 독점욕에 빠지게 되면 사회적으로 더 큰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게 되어 오히려 행복을 찾는 것이 더 큰 불행의 원인이 된다.> 박근혜 최순실 두 사람에게 꼭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김형석 교수는 행복에도 차원이 있다고 합니다. 예술이나 학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십분 발휘하여 성공한 사람은 보다 차원 높은 행복한 사람이며 그런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성들여 노력하는 사람은 성공하여 행복할 수 있고 게으른 사람은 실패하여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술이나 학문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재능이나 두뇌는 누구에게나 주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일반 사람들 포함 모든 이에게 해당할 수 있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 하는 근원적 의문을 가져 봅니다. 추상적인 용어이기에 행복 자체는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행복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행복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의 편안한 모습, 산으로 개울로 같이 뛰노는 개구장이들의 모습, 의기 투합하여 밤을 지새며 토론하고 행사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동지들의 진지한 모습, 설레임 그리움 기다림 아쉬움 안타까움 배려 희생등 순수하고 무한한 마음을 나누는 연인의 모습, 미주알 고주알 오손도손 얘기를 하며 팔짱을 끼고 시장을 거리를 돌아다니는 친구같은 모녀(母女)의 모습, 달리기 시합하듯 둘이서 같이 마루를 기어 달리며 까르르 웃어대는 조손(祖孫)의 천진한 모습들은 분명 행복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 모습들을 관통하는 Key word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대상이 누구든 사랑이 있는 곳엔 행복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 사랑의 손길에 행복이 있겠고 비록 어려운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가까운 이웃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따뜻한 마음에도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행복들은 차원이 높은 정신적 가치에 기반한 행복은 아니겠지만 인간 내면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공동체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기초적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갖고 싶었던 것을 갖게 되었을때, 대학에 직장에 어려운 시험에 합격되었을 때, 성공하여 사람들의 갈채와 선망을 받을 때도 행복을 느낍니다. 그것들이 바로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소유에서 오는 행복인데 그 자체가 목적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의 수명은 짧고 더구나 상실했을 때는 고통과 불행이 따라 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아기는 자라고 어린시절 젊은 시절이 꿈같이 지나 갑니다. 친구들은 제 각기 짝을 찾아 이미 떠났고 가까이 있던 부모도 떠나고 자식들도 제 갈 길을 간 후 종내에는 혼자 남아 지난 날을 돌이켜 보는 노인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험난합니다. 이 세상엔 사랑보다도 미움이나 증오 반목 무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살이도 험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행한 일이 행복한 일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복이 지속적이지 않듯 불행도 지속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불행도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이쯤이면 둥지를 나온 새끼 새들이 종종거리며 다니는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는 어미 새와 새끼 새들이 어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고 서로 넘어뜨리고 엉키며 물고 덤비는 장난을 하고 있는 새끼들을 먹이려고 힘껏 Wild Beast 무리를 쫒는 어미 사자 가족에게 어찌 행복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 행복이 지속적이지는 않겠지만 역시 동물들에게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은 분명하니 행복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의 원천인 험난한 세상을 순화 시키는 역할은 정부의 몫이고 행복의 원천인 사랑을 퍼뜨리는 역할은 종교의 사명인데 정부도 종교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부나 종교가 제 역할을 재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불행한 인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참여하고 행동하여 바로 잡는 일은 바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 모두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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