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주 최고 부호 던스뮈어 父子의 삶과 죽음

BC주 최고 부호 던스뮈어 父子의 삶과 죽음

Craigdarroch Castle

<빅토리아 유명인 4> Dunsmuir Family

빅토리아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두 성, 크레익다록 캐슬(Craigdarroch Castle)과 해틀리 캐슬(Hatley Castle)은 알고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지은 성이다. 19세기 BC주 최고의 부호로 이름을 날린 로버트 던스뮈어(Dunsmuir)와 그의 아들 제임스가 그 주인공이다.

아내에게 성을 하나씩 남기고 간 던스뮈어 패밀리의 남자들, 세 남자의 스토리를 들여다 봤다.

Robert Dunsmuir

로버트 던스뮈어 <사진: wikipedia>

‘석탄제국’ 던스뮈어 패밀리를 탄생시킨 로버트는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조부모 때부터 고향에서 작은 탄광 사업을 했으나 ,전염병으로 부모와 누이 등 가족을 모두 모두 잃고 7살에 고아가 된 로버트는 26세인 1851년 밴쿠버 아일랜드로 이주한다. 그는 헛슨베이의 탄광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다가 자신의 기업을 설립하고 웰링턴(현재 나나이모의 일부)에서 대량의 석탄을 발굴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룬다.

로버트는 그러나 파업을 예고하는 광부들을 탄광속에 몇 시간 가둔 후 임금을 삭감하거나 임금을 덜 주기 위해 값싼 중국인부들을 데려와 고용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냉혹한 처신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던스뮈어 패밀리는 이 때부터 수 십년간 BC주의 석탄산업을 지배했을 뿐 아니라 철도, 선박, 채굴소, 제철, 제재소, 제방, 극장, 광대한 부동산 등으로 손을 뻗는 ‘문어발 재벌식’ 경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도시 설립, 정치분야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대, BC주 각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버트는 나중에 나나이모 주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아내 조앤과의 사이에 아들 2명과 딸 8명을 둔 그는 두 아들에게 비즈니스를 맡기고 빅토리아로 이주한다. 빅토리아의 Fairview에 대저택을 지은 후 1887년에는 아내에게 헌정하기 위해 더 큰 저택, 크레익다록 캐슬을 짓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이 서부 캐나다에서 가장 부유하고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과시하고자 특별히 공를 들인 호화저택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889년 사망하고 성은 다음 해 두 아들에 의해 완성된다. 공교롭게도 저택의 설계자인 포틀랜드의 건축가 또한 성이 완성되기 전에 이승과 하직함으로써 이 성은 ‘비운의 성’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BC주 최고 부호의 장례식에서는 세인트 앤드루 처치에서 로스베이 묘지까지 행렬이 이루어졌으며 당시 1만2,000여명에 이르는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우아한 크레익다록 캐슬의 4층 석조건물 내에는 39개의 방이 있으며 특히 스테인드 글라스는 캐나다 건축물 중 가장 빼어나다는 평을 들을 만큼 아름다운 장식을 자랑한다. 재산과 성을 상속 받은 아내 조앤이 결혼하지 않은 세 딸 등과 함께 성으로 이주, 세상을 떠날 때 까지 18년 동안 이 성에서 살았다.

1908년 조앤이 세상을 떠난 후 저택은 5명의 딸들에게 상속됐으나 운영자금 문제 때문에 경매로 매각된 후 우여곡절 끝에 1995년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거쳐 박물관으로 거듭나면서 지금은 매년 15만 여명의 방문객들을 맞는 빅토리아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James Dunsmuir

제임스 던스뮈어 <사진: wikipedia>

아버지의 거대한 기업을 물려받은 제임스는1910년까지 던스뮈어 ‘석탄 제국’을 운영하면서 다른 산업분야에도 투자해 사업을 더욱 확장시켰다. 그는 1905년 자신이 소유하던 에스콰이몰트와 나나이모 간을 잇는 철도를 캐나다퍼시픽(CP) 철도에 매각하고 1910년 탄광을 윌리엄 매캔지, 도널드 만에게 1,000만 달러에 매각한다.

석탄과 철도 사업가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던 그는 BC주의원과 주총리를 지냈으며 1906년 주 총독으로 선출됐으나 3년 후 사임했다. 밴쿠버 아일랜드의 레이디 스미스 역시 제임스가 설립한 타운으로, 이 이름은 캐나다가 참전한 첫 전쟁인 보어전쟁 중 레이디 스미스 전(Battle of Ladysmith)의 승리를 기념해 붙인 것.

아버지 처럼 자식복이 많아 아들 3명과 딸 9명을 둔 제임스는 1906년 해틀리 파크 일대 광활한 대지를 사들여 가족들을 위해 15세기 에드워드왕 시대의 성을 복원한 대저택을 건축하도록 했다. 이 해틀리 캐슬은 ‘비용에 상관없이 지으라’는 그의 지시에 따라 침실 22개의 방을 비롯한 내부 에 최고급 자재를 사용하고 조명과 일부 장식은 유럽에서 주문하는 등 막대한 비용을 들여 호화롭게 지어졌다. .

제임스가 69세로 세상을 떠난 후 딸들과 함께 살던 아내 로라와 딸들도 사망하고 대저택과 정원의 관리에 사용되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1940년 저택이 매각 된다. 가족들은 ‘이 건물은 반드시 교육기관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불과 7만5천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정부에 매각했다. 성은 현재 로열로즈(Royal Roads) 대학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해틀리 캐슬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인해 영화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높아 ‘X-Men’, ‘Smallville’ 등 30편이 넘는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Alexander Dunsmuir

로버트의 둘째 아들 알렉산더는 형과 달리 비운의 남성이었다. 그는 나나이모에서 패밀리 탄광 비즈니스를 관리하다가 사업을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로 이주했다. 당시 미혼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만나 친구가 된 월리스라는 바텐터의 아내 조세핀을 만나면서 딸까지 있는 이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결국 조세핀은 이혼을 하지만 두 사람이 결혼하면 유산을 줄수 없다는 알렉산더 어머니의 반대로 비밀리에 장기간의 동거에 들어간다.

그 역시 아버지 처럼 아내를 위해 오클랜드에 대저택 던스뮈어 하우스를 건축, 1899년 결혼을 며칠 앞두고 완성한다. 그러나 20년의 동거 후 결혼식을 올린지 불과 6개월만에 뉴욕으로 떠난 신혼여행 중 알콜중독 합병증으로 4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폐암으로 오래 투병했던 아내 조세핀 역시 남편이 남긴 저택에서 단 18개월을 살다가 1901년 사망했으며 저택은 당시 쇼걸이었던 조세핀의 딸에게 남겨졌다가 매각돼 현재 오클랜드 시 소유로 남아있다.

당대 최고의 부를 누리던 던스뮈어 패밀리는 그러나 재산 문제로 모자간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사업을 함께 운영한 두 아들에게 비즈니스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한 로버트가 유언을 통해 기업과 재산 모두를 아내에게 물려주면서 모자간의 재산분쟁이 시작된 것. 분쟁이 소송으로 번지면서 당시 BC주 총독이던 제임스의 평판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 분쟁은 1908년 모친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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