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16년

<송선생 교육/이민 칼럼 108>캐나다 이민 16년

글/사진 제공: 송시혁 <송학원 원장, seahsong@gmail.com>

한국을 떠나다…

‘할아버지, 할머니, 몇년 동안 외국에 다녀올게요, 건강하세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인사드리고 대문을 막 나서려하는데, 약간의 치매가 있으신 할머니는 어느새 문앞에 먼저 나오셔서 털썩 앉아 울고 계셨다. ‘할머니, 가능한 빨리 다녀올게요…’ ‘….아냐, 이제 더 이상 너희들을 다시 만나 보기는 힘들것 같구나. 가서 잘 살아라.’

성수대교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도시의 야경은 그 날 따라 더 아름다왔다. 글썽거리는 눈물이 불빛을 크고 작은 둥근 원으로 아른거리면서, 흐르는 강물은 온통 도시의 불빛이 되었다. 차창 너머로 스쳐지나가는 대교의 가로등은 고장난 영사기가 되어 과거의 추억들을 빠르게 되돌리고 있었다. 나와 아내 뿐만아니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겼던 아이들도 뒷자석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캐나다 이민 신청을 하고,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둔 후, 필리핀 마닐라 근교에 위치한 국제 대학원 기숙사에서 온 가족이 10개월 가량 머물면서, 우리 부부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들도 대학원 부속 국제학교를 다녔다. 특히, 외국이라는 개념이 없는 초등 1학년생 둘째는‘왜 선생님이 한국말 대신에 ‘영어말’ 을 하냐’고 울고 불고 했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영어 표현도 못하는 애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

이민 온 이유

캐나다 이민은 원래 캐나다에서 계속 살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우선은, 캐나다에서 MBA를 공부하는데 영주권이 학비를 싸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두번 째는 MBA 졸업 후, 2년정도 캐네디언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도 4~5년 동안 영어를 배우는 것이 부수적 목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캐나다 대학에서 MBA를 공부하면 영어가 많이 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영어를 늘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 후, 캐나다에서 대학원 공부와 몇년간의 직장 생활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자영업을 할 것이라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캐나다 대학(행정)이나 은행(영업)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까지 한인학생과 중국계 학생들을 위한 (입시)학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민이 되었든, 유학이 되었든, 대우가 좋거나 안정된 회사(또는 사업)를 그만두고 외국에 장기간 거주를 목적으로 이주한다는 것은생각보다 리스크가 큰 것 같다. 하지만, 먼저 이민을 간 선배들이 아무리 이민을 반대해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 이민을 오고 있다. 일단, 이민을 가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그 계획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민병(病)’에 걸리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이미 이민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캐나다 이민자인 내 경험에 비추어 볼때, (자기가 자라온 나라가 아닌 타국 중에서) 캐나다는 이민과 유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 중에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성별/나이/빈부/인종 등의 차별이 거의 없고, 전반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좋은 캐나다에서, 내 자신은 물론, 우리 애들이 이 나라에 계속 살기를 내가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캐나다와 비교할 때, 한국은 상업과 공공 서비스가 더 신속하고 좋은 장점도 많은 반면, 사회 시스템에 여러 차별이 만연하는 등의 단점도 있다.)

자녀들의 이민 생활

현재 우리 애들(딸 둘)은, 나의 바램과는 달리,모두 캐나다에 있지 않다.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가 아닌 또 다른 타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애들이 장래에 캐나다에서 살기를 희망하고 있고, 애들도 언제가는 캐나다로 돌아 올 거라고 말한다.

첫 째 아이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워털루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회계학 통합전공 (경제학 부전공)을 공부하고 현재, 대서양에 위치한 영국령 버뮤다 PwC (한국의 삼일회계 법인이 속한)에서 Chartered Accountant로 일하고 있고, 둘 째 아이는 뉴욕시에 있는 콜롬비아 대학에서Operation Research 전공, 창업과 경제학 부전공을 한 후, 현재 뉴욕에 있는 IT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름있는 캐나다나 미국 대학을 졸업했을 때 장점은 무엇보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명한 북미대학의 학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반대로, 북미에서는 대학의 이름보다는, 요즘과 같이 치열한 무한 경쟁 시대가 요구하는 분야(전공)의 전문적인 실력이 있어야 한다. 최근 미국 고용시장에서는, 외국인이나 사회 네트워크가 약한 이민자라면, 가능한 STEM(Science, Tech, Engineering, Math)에 속한 전공을 해야 취업이 용이하다는 말이 많은데, 거의 맞는 말이다. (물론, 이공계가 아닌 법학, 경영학, 행정학, 경제학 등의 전문 분야를 인지도가 큰 대학에서 공부한 경우도 여전히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민 자녀들의 어려움

빅토리아의 지인들 중에는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을 잘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자녀들이 외국에서 크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되는 된다. 우리 애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애들은 필리핀에서 10개월간 머물면서 기본적인 영어능력을 가지고 캐나다에 이민을 왔기에, 빠르게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는 듯 보였지만, 알게 모르게 문화적인 충격을 겪기도 했다.

둘째는 캐나다에 오자마자 영어가 급성장하면서 캐네디언 친구들과 언어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었기에 친한 친구들이 많았다. 심지어, 유럽권에서 이민 온, 영어가 서툰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자신이 캐네디언이 다 된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은 주류 캐네디언과 다른 문화와 외모를 가진 아시아인(人) 이라면서, 한국인이 주류인 한국에 가서 살겠다고 막무가내로 조르기도 했다. (그때 둘째는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의 새로운 반편성에서 자기가 속한 반이 거의 모두 유색 인종이고, 다른 반은 모두 백인으로, 의도적으로 인종을 분리했다고 의구심을 가졌다. (나중에 학교에서 의도하지 않게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이번엔 초등학교 때와 반대로 캐네디언 또래 여자애들과 너무 친해지면서, 심지어 숙제할 시간도 없이 공부에 소홀하기도 했고, 고등학생이 되서는 뒤늦게 캐나다에 온 한인 학생들과 정서적, 문화적, 언어적 갈등도 있었다. 학년 전체 1~2등의 우수한 고교성적과 수학경시및 AP등 각종 학교외 시험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받았지만,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는 좌절도 겪고, 대학 학업과 생활에 자신만만해 했지만, 원하는 회사의 Co-op (유급인턴)을 몇 번 놓치면서 힘들어 하기도 했다.

첫째의 경험과 교훈은, 둘째의 학업, 대학입시, 대학 생활 등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 하지만, 둘째도 고등학교 때 문화적 편견을 갖고 있던 어떤 카운셀러 선생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고, 한인교회에서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때로 교회 친구관계와 교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시련들은 어린 자녀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시련은 겪는 것 자체가 인생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도움과 조언으로 문제를 극복했을 때 더 올바른 인생의 항로가 열릴 수 있고 무엇보다 어린 자녀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이상이다. 자녀를 언어, 문화, 정서, 인종이 완전히 다른 타국에 그냥 방목을 하면 그냥 잘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민자나 유학을 보내는 부모들이 있다면, 정말로 ‘이민과 유학’은 말리고 싶다. (사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이민 2세들도 어렸을 때 이민 온 1.5세 자녀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이민 1세들

이민을 오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적지가 않다. 무엇보다, 자녀들 교육 문제와 더불어, 경제적인 문제 즉, 사업이나 취업이 젤 중요한데, 완전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한 이민 1세들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나는 한국에서 IT와 유통 분야 기획 경력과 영어 능력을 바탕으로 캐나다 이민국에서 현지 취업이 가능한 Skilled worker로 이민자격을 주는 소위 ‘독립이민’을 온 경우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내 경력을 캐나다 회사에서 써먹기에는 영어가 부족하고, 매니지먼트와 비지니스 방식도 많이 달랐다. 그래서 캐나다 대학원(MBA)에서 공부했지만, 대학원 석사 학위 정도로는 그 갭을 메꾸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경우이고, 대학원 졸업 후 괜챦은 일자리를 얻은 이민자도 있다.)

이미 이민을 겪은 내가 다시 이민을 결정하는 때로 돌아간다면, 어쩌면 이민 계획을 포기하고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녔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민을 다시 온다면, 적어도 MBA를 공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에 좀 더 취업이 용이하고 조건이 좋은 전문 (기술) 분야를 공부할 것 같다. 여러 이유로 취업을 하지 않고 비지니스를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겠지만, 여전히 언어 문제와 자영업에 필요한 기술 (또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캐나다 이민을 말리는 대부분의 이유는 캐나다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캐나다 경제 시스템의 문제도, 캐나다 이민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퇴직을 한 경우, 어떤 사업이나 어떤 직업을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히려 캐나다가 한국보다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캐나다는 직업에 귀천이 없고, 건강만 하다면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고, 비지니스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되고, 경쟁도 심하지 않고, 인종/남녀/빈부 등의 차별도 없고, 저소득자들에게는 사회복지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캐나다 이민은, 주위의 이민 선배들이 말하는 것 처럼, ‘덜 벌면 덜 쓰되,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 수 있고’, (자녀들 교육에 신경을 쓴다면) 캐나다 교육의 결과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캐나다 이민을 가기 전 날,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첫째 아이가 내게 용기를 주듯이 말을 했다. ‘아빠, 나는 꼭 성공해서 한국에 올거야.’그리고, 이민을 오고 몇 년 후, 둘째가 물어보았다. ‘아빠,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캐나다에서 살까, 아니면 한국에서 살까?’

나는 가끔 혼자서 말한다. ‘응….. 이제…. 한국, 캐나다, 미국, 어디든, 니네들이 살고 싶은데서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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