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런 천사

<문학회 수필> 나의 사랑스런 천사

박재숙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9월 새학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인다. 첫 날 등원 시 나누는 인사 몇 마디면 성격을 알아채기에 충분하지만, 그 중 몇몇은 부모님이 곁에 있고 없고에 따라 전혀 다른 아이가 되기도 한다.

등원 시간이 한참 지나 조그만 여자 아이와 어머니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선다. 그리고 마치 경고를 하듯 그녀가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전에 다니던 센터에서 매일 같이 소리를 지르고, 친구들을 때려서 ‘골칫덩어리 에바’라는 별명까지 얻었단다. 그녀는 내게 ‘행운을 빈다’며 교실을 떠났고, 남겨진 에바는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나를 곁눈으로 훑어보며 한마디한다. “Teacher! I am hungry.” 아침을 먹고 온 에바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장난감 상자에 관심을 갖는 대신 배가 고프다며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떠나기전 에바의 어머니에게 말했었다. ‘지난 일들은 이미 과거에 일이고 나는 그 어떤것도 기억하지 않겠다.’ 에바가 10살 터울의 언니 흉내를 내면 가만히 그 작은 두 손을 잡고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밀어내듯 쳐다보았다. 그럴수록 나는 그 아이에게 자주 말해주었다. “네 눈속에 내 모습이 보여. 너도 자세히 내 눈을 들여다봐. 네가 얼마나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는지.”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게 바짝 다가섰다가 놀란듯이 한 걸음 물러났다. 낮잠 시간에 소리지를 태세인 아이를 편한 자세로 눕혔다. 한 손은 에바의 등에 얹고, 다른 손으로 아토피 때문에 까슬해진 다리를 쓸어주었다. 아이는 한동안 귀찮다는 듯이 꿈틀거리다가 아침산책, 놀이터에서 보낸 시간 때문인지 이내 잠들었다. 점심 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예절을 가르치고, 사과하기 싫어하는 에바를 위해 미안하단 가사만 있는 엉터리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과 다같이 불렀다. 아이 어머니는 처음에 아이의 변화에 귀기울이지 않았지만, 몇 주 후에는 전에 다니던 센터가 교육비가 낮았던만큼 질도 좋지않았다며 불만을 했다. 나는 아이의 변화가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다. 헤어질 때 늘 에바에게 ‘나의 사랑스런 천사’라고 불러주었고 그렇게 대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운동장 한켠 바위 위에 서있던 제이든이 팔을 크게 휘젓자 에바가 놀라 한껏 움츠러 들었다. “조심해, 작은 천사가 네 옆에 있어’라고 하자 제이든은 어깨 뒤로 넘겨 보고는 수퍼 히어로 흉내를 내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멀어진 제이든을 향해 에바가 소리쳤다. “그녀가 나의 선생님이야.” 나도 모르게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고, 에바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었다. 불과 두 달여만에 나를 자신의 선생님으로 받아주었다.

20대 초반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수 많은 동료들과 일했지만, 나는 결코 “People person”은 아니었다. 내성적인 나로서는 동료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매일 같이 마주해야 하는 남자직원들이 부담스러워 늘 바쁜 척 시선을 회피하거나 차갑게 응대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장성출신이라는 헛소문까지 돌았었다. 하지만, 내가 좋은 동료로 또는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을 때 나 역시 타고난 성격과 달리 먼저 손을 내미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8년전 실습기간 중 주제를 정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매일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도무지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아침, 저녁으로 학부모님들에게 활동내역을 설명하는 것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굳힐 뿐 이었다. 며칠 후 담당교사였던 제니퍼가 내 등을 다독이면서 말을 건냈다. “네가 이야기책 읽어줄 때 큰 도움이 됐어. 그리고, 클레어는 부탁도 어려워 할만큼 소심한 아이인데, 네 뒤에 앉는걸 보니까, 너를 좋아하는것 같아. 그 아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좀 더 크게하고, 이름을 자주 불러주면 사회성 길러주는데 도움이 많이 될거야.” 그 때의 그 따뜻한 조언 덕에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고 나의 소심한 성격을 바꿀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교실문이 열리면 아이와 학부모에게 먼저 인사를 건내고, 아이의 성장은 물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울고웃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친구가 됐다.

나는 운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을 했지만 보통 성인의 경우는 그 계기나 변화가 쉽지않다. 모두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친구로서 다가가 말해주려 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보든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변화를 두려워하지않고, 용감하게 맞서서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과 싸울 수 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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