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危機)의 코리안 캐네디언

<송선생 칼럼 105> 위기(危機)의 코리안 캐네디언

글/사진 제공: 송시혁 <송학원 원장seahsong@gmail.com>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 이민자 자녀들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면서 자칫하면 정체성이 흔들리고 사회로 부터 스스로 자기를 고립시키는 위기(危機)에 처했을 때, 어떻게 우리 자녀들이 이러한 위(危)험한 순간을 잘 극복하고 기(機)회를 가질 수 있는 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위기는 절망하고 좌절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하면서…..

탈북 새터민

지난 7월 28일 홍콩발 뉴스에 따르면, 국제수학올림피아드(International Math Olympiad)에 참가한 북한의 18세 고교생이 홍콩 주재 한국영사관에 망명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ce)’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심각한 시점이라, 그의 망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까 염려가 된다.

한국이 탈북 망명을 받아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망명을 신청한 학생은 북한 고위급 자녀로 현재 이러한 한.중 외교 상황을 잘 알고 있을텐데,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제 3국에 망명을 요청하지 않고 한국 외교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이 학생은 이번 IMO 참가가 두세번째이고, 금메달 또는 은메달을 받은 수학영재이기 때문에,현재의 중국과 같이 북한과 특수 동맹 관계가 아니라면,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정치적 망명자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한반도는 현재 50년 넘게 남과 북으로 갈라져 적대적인 두체제가 대립하고 있으면서, 1900년대이후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다르고, 문화와 정서마저 다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탈북 망명자들 대부분이 굳이 한국을 망명지로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대부분은 탈북하는 순간 다시 북한체제로 돌아갈 수 없는 정치적 망명자이기에, 캐나다와 같은 서방국가에 망명하는 것이 가능한데도, 한국을 굳이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언어가 같기 때문이기에 자연적으로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의 한 나라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과 북이 함께 한국어를 쓰는 한, 미래의 한반도 통일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필연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망명을 신청한 학생도 한국을 다른 나라가 아닌, 동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체성 (正體性, Identity)

10대 중반 이후에 이민을 온 1세대나 1.5세대 이민자들의 경우 대부분 자기가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반면, 아주 어려서 이민을 왔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거나, 캐나다에서 태어난 이민자 자녀들 중에는 자신을 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캐네디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한인 부모들 중에는 자녀들이 영어만 쓰고 심지어 한국적 정서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우리애들은 캐네디언이에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개인의 정체성은 자기가 속한 국적, 민족 혈통, 태어난 장소, 사용하는 언어, 자라온 문화 등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정체성이란 ‘주위 환경이나 사정이 변해도 자신의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상황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는 국적이나 사회, 문화, 사용언어 보다는, 결코 변하지 않는 ‘혈통’이나 ‘태어난 장소’가 정체성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예를 들어서, 캐나다 또는 미국과 같은 속지(屬地)주의 국가에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그 나라 시민권이 주어지는 반면, 한국 또는 일본과 같이 혈통을 중요시 하는 속인(屬人)주의 국가에서는, 부모의 국적이 그 나라 시민이 아니라면, 태어났다는 이유로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나 유태인들은 현재의 국적보다 혈통에 따른, 동일 민족 여부를 중요시 한다.

그런데, 태어난 장소나 혈통은 본인 스스로가 결정하거나 노력해서 얻을 수 없는 문제지만, 사용하는 ‘언어’ 또는 즐기고자 하는 ‘문화’, ‘사회’ 관계 등은 본인이 의식하고 노력해야 습득할 수 있는 것들 이다. 그리고, 현재 본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들이고,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느끼고 선호하는 가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즉, ‘나’는 ‘내가’ 믿는 것이다( I am what I believe.)

어떤 이민 1.5세, 2세의 비극적인 사건

2007년 4월 16일 오전,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Virginia Tech Massacre라고 부름)이 났다. 이 사건에서 범인은 33명을 살해하고 29명을 다치게 했다. 범인은 이민 1.5세인 조승희라는 한국계 미국 이민자이다. (그는 한국 국적자이지만, 사실, 8살때부터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봐야한다.)

이런 끔찍한 범행을 한 동기는 누적된 분노의 폭발로, ‘사회에 대한 증오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조승희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의 분노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살때 미국으로 이민와서 초등학교 시절은 꽤 똑똑한 학생으로 친구들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민 생활과 영어에 충분히 적응한 중학교때 부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충분히 교육시키지만,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는 여전히 친구의 외모나 행동을 보고 놀리는 경우가 적지 않고, 특히, 소수인종인 아시아인의 외모는 그런 좋지 않은 학생들의 타겟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것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학생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받게되고, 심심치 않게 인종차별적인 발언도 들으면서, 그는 정체성에 심한 혼돈이 왔다. 한국을 떠난지 오래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생소하고, 오히려 영어와 미국문화가 훨씬 익숙해 질 때, 그는 미국 친구들한테 외계인 취급을 받으면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가족들도 그의 우울증세를 걱정하고 많은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가족들로 부터도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켰다. 결국 그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해 분노를 쌓아갔고, 성인이 되는 시점에서 그는 자기의 분노를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는 비극을 저지르고만 것이다.

아직도 많은 빅토리아 교민들이 기억하는 또 다른 사건을 생각해보자. 2007년 9월 4일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아내, 아들, 장인과 장모를 살해하고 자신(Peter Lee)도 자살한 (Mass murder-suicide)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동기는 이혼을 원하는 부인과의 불화로 발생한 사건이지만, 역시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한국계 이민 1.5세의 문제로 분류될 수 있다. Peter Lee씨는 한국에서 온 부인과 함께 꽤 규모가 큰 한인 식당을 운영하고, 한인 커뮤니티와 교류도 있었지만, 한인과 한국 문화에 이질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부인과 처가 집 식구들로 부터 환영받지 못하면서 상실감과 분노에 따른 좌절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민자 자녀들의 정체성

이민자 자녀들이 캐나다 또는 미국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민 1.5세와 2세들은 한국어를 쉽게 잊어버리고 영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영어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영어가 외국어(second language)이기에 불편할 수 밖에 없는 부모로 부터 고급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책이나 학교 공부 등 학습을 통해서 언어를 습득하지 않으면 그들의 영어 수준은 중학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나이에 이민 온 자녀들은 한국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아예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조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친척들과의 대화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소통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또한, 가정에서는 한국에서 이민 온 부모의 한국 문화를 따라야 하고, 밖에서는 캐나다 문화를 따라야하는데서 오는 혼돈이 생기고 결국 한국 문화를 경시(輕視, negligence)하면서 가족에게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게된다.

다행히, 지금까지 이러한 심적 갈등을 자각하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완벽한 캐네디언(또는 미국인)이라고 믿는 이민 자녀들도 많다. 이민 3, 4세의 경우는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선척적인 외모는 영락없는 Asian 이민자 즉, 캐나다나 미국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minor임을 깨닫는 순간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영어발음이 서툰 이민자들을 보면서 그들은 자기와 관련이 없는 아시안 이민자 또는 멕시칸 이민자 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캐나다 문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캐나다 친구들의 얼굴이 자신에게 익숙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길을 가다가거울에 비친 자신을 우연히 보면서본인에게서 영락없는 아시아 이민자의 모습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느끼는 순간 ‘나는 정말 캐네디언인가?’라는 혼돈이 오게된다.

설상가상으로, 학창시절 불행하게도 못된 캐네디언 친구들로부터 외모나 음식에 대해서 놀림을 당하고, 다른 친구들은 그것을 재밌어 하는 것을 겪게되면, 집단 따돌림으로 느껴지고 만다. 이렇게되면, 심한 정체성의 혼란이 오게되고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외계인’이 되고 만다.

이민자 자녀들을 위한 정체성 해법

우선 어린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이 캐나다에서 갈등 없이 살아가려면,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계 혼혈의 경우도 정체성의 갈등은 피해갈 수 없다.)

덴마크계 유태인 심리학자 Erikson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자아 정체성이 자연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사회성 발달 이론으로 유명한 Erikson 은 ‘자아정체감 발달’이 그 자신의 삶과 이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으로 인식했다. 왜냐하면, Erikson 자신은 그의 유태인 어머니와 덴마크인 생부의 간통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교 가정에서 자란 푸른 눈을 가진 금발의 소년이었고, (유태) 사원 학교에서는 노르만인이라며 괴롭힘을 당했고, (라틴) 문법 학교에서는 유대인이라며 놀림을 당했다.’

정체성이 확실하려면, 자신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자각해야 한다. 즉, ‘확실한 나’라는 토대위에 자긍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감이란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을 모두 포함한다. 청소년이나 젊은 청년들의 경우 운동 등을 통해서 남들보다 우수한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감과 자긍심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신적인 자긍심과 자신감’은 더욱 중요하다. 예를들어서, 자신이 Korean Canadian이라고 말하려면 당연히 한국에 대해서 유기적인 관련이 있어야 한다. 우선 부모중에 한 사람이 한국인 또는 한국계 캐네디언이야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면 단지 부모가 한국계라는 이유로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한국 문화를 즐기고, 한인 친구들을 만나고, 한국어를 쓴다면, 본인이 굳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이 한국계 캐네디언임을 자신할 수 있다. 반대로, 위에서 언급한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어 습득에 대한 잇점

한국어를 할 줄 알면 한국문화를 즐기는 것과 한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더러 한인교회나 기타 한인 봉사단체등의 한인 커뮤니티에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부모와는 물론, 조부모나 친척들과 원할한 소통이 지속된다.

한국계 이민자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한다면, IT 등 첨단산업이 발전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한국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미국과 토론토 IT 회사에 일하고 있는 한인 교포 자녀들 중에 삼성 등 한국기업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주관하거나 참여하여 일하는경우도 종종 보아왔다.

최근에는 K-Pop, K-Drama, K-Movie, K-food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인들도 이러한 ‘한류(韓流)’를 더 즐기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10대 이민자 자녀들이 한국어를 더 잘한다면, 한류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잇점과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또는 혼돈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위 칼럼은 캐나다 서부지역 한국협회 5차 교사연수(2016년 8월27일, 밴쿠버)에서 필자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 입니다.)

송시혁
<빅토리아 한국어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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