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사랑

<문학회 수필 > 미운 사랑

글: 이승원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한국에서 해외이민을 생각하면서 미국, 오스트렐리아, 뉴질랜드, 미국…등등 여러 나라를 나름대로 조사를 했었다. 두 딸을 가진 에미로서 이민을 생각하고, 그 것을 남편에게 제안하기 위해서는 정말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왜 이민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러면 어떤 나라가, 왜 좋은지?

뉴질랜드와 오스트렐리아는 광활한 땅과 자연의 풍요함 그리고 낮은 인구밀도로 사람들이 평화롭고 느린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뉴질랜드는 낙농업이 대표적이라면 오스트렐리아는 대단한 농산물의 산지였다. 그러나 그 두 나라는 내 아이들이 성장한 다음, 아이들에게 생활 수단을 위한 선택의 폭이 좁은 곳이기도 했다. 미국은 많은 사회적인 문제와 부정적인 요소가 있슴에도 여전히 이민자들의 꿈의 실현이 가능해 보이는 나라였다. 그렇다. 죽도록 노력한다면 인연,학연, 지연이 없더라도 어느정도 노력의 댓가를 기대할 수 있는 나라. 그런데 나는 캐나다를 선택하였다.

어느 날, 텔레비젼에서 캐나다에 대한 쇼를 시청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밴쿠버에서부터 록키까지 자동차로 달리면서 자연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 여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대강 여덟시간에서 아홉시간이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토록 긴 여정위에 주유소가 오직 한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주유소가 있는 곳에 식당도 하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였다면…?

미래 세대에게 땅을 빌려쓰는 지금의 세대는, 최선을 다해 그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어서 다음의 주인들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길가에 편의시설을 허가 할수록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슴을 염려한 것이었다. 캐나다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은, 사람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이 그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심 조심, 미안한 마음으로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연에게 빌려쓴다는 것. 나는 그 자리에서 캐나다에 점을 찍었다. 백년대계를 가진 나라, 자연에게 경외감을 가진 사회, 나는 감동했다. 지금도 나는 이런 생각들을 깊이 사랑한다.

그 밖에도 내가 이민을 캐나다로 결정한데는 세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나는 어린 시절을 냉전시대에 살았다. 교육받은 바에 의하면 세상의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적대국이었다. 내가 갈 수 없는 나라가 참 여럿이었다. 그런데 캐나다는 세상에 적대국을 갖고 있지 않는 나라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수용적이며 개방적인 정치적 방향이 좋았다. 둘째, 캐나다에는 젊은 청년들에게 ‘국방의 의무’가 없었다. 나에게는 아들이 없었지만, 그 ‘국방의무’에 대해 깊은비애감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 사회의 전반을 지배하는 군대문화에 대한 반감이었으리라… 세째는, 캐나다의 풍부한 천연자원이었다. 캐나다 국민의 수 보다도 더 많다는 호수, 캐나다 국민들 전체가 나무를 베어 팔아서 먹고 산다해도, 백 육십 년을 살 수 있다는 산림 자원, 광활하고 비옥한 땅, 그래서 수출을 하지 않으면 썪혀서 버려야 하는 넘치는 곡물자원… 그렇다! 내 자식들은 결코, 목이 마를일도, 추위에 떨 일도, 배가 고파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주저 없이 우리 가족을 캐나다로 향하게 했다.

그와 같은 확신으로 미래의 새로운 삶에 대한기대를 안고 2001 년 5월 8일 인천공항을 통하여 한국을 떠났다. 공항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비행기는 태평양을 건너서 캐나다로 향했다. 그랬다, 나는 그 순간 정신적으로 영원히 내 조국을 떠나고자 했다. 왜 나는 그토록 비장해야만 했을까?

내가 태어난 시기는 비극적인 남북한의 6.25 전쟁 직후였다. 전쟁의 상흔이 남은 시절이 나의 유아기였으며,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는 일본의 잔재를 경험했었다.그런 시대적인 상황 때문인지 나는 일찌기 ‘민족’이나 ‘조국’에 대해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 같은 믿음은, 성장 시기 내내, 그리고 성인시기에 이르도록 나의 정신과 감정을 억압하는 압제자가 되었다.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할 수없는 무기력, 그릇된 것이라고 믿는 것을 따라야 하는 비겁성…어린시절의 4.19에 대한 기억, ‘재건’이라는 글씨를 산마다 나무를 훼손해가며 마구 새기던 5.16, 월남전 참전, 1.21 사태, 박정희 대통령 부부의 암살, 5.18광주 민주화운동인, 정권찬탈, 끝없는 남북간의 정치적인 놀음과 반목… 아! 나는 서울시청 앞에, 무장한 군인과 탱크가 난무하던 내 젊은날의 어둠을, 인간임을 포기한 듯이 휘두른 폭력이 국민을 폭압하던 때의 기억을 떨치고 싶었다. 그것들은 평생토록 나를 지배할 고통과 상처였다. 탈출하고 싶었다. 크게 쉼쉬고 싶었다, 자유롭고 싶었다. 조국을 잊고 싶었다.

그러했슴에도, 나는 올해도 태평양 건너편의 내 조국을 향해 ‘미운사랑’을 보낸다. 조국이 발전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고, 남한과 북한의 ‘민족의 대화합’을 위해 큰 걸음을 할 수 있기를 아프도록 기대한다… 조국 산하에 백년대계를 위한 큰 울림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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