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그러나 기회의 나라

어둠, 그러나 기회의 나라

<문학회 글> 탄자니아 여행기 1

글/사진: 한상영(빅토리아문학회 회원)
글/사진: 한상영(빅토리아문학회 회원)

어둠속으로

빅토리아에서 애드몬튼으로 애드몬튼에서 북극을 넘어 암스텔담으로 다시 암스텔담에서 알프스를 넘고 지중해를 건너 사하라사막을 지나는 장장 30시간의 여정 끝에 현지 시간 밤 7시 40분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한다. 광활한 초원을 떼를 지어 가로 지르는 누우의 행렬, 느릿느릿 움직이는 한 무리의 코끼리 들이나 다가가도 아무 두려움 없이 눈을 꿈벅이며 슬슬 비켜 나는 얼룩말들의 모습과 기세 좋게 달려오는 사자를 향해 총을 쏘아 쓰러뜨리는 장면 등 영화 Out Of Africa나 킬리만자로의 눈을 가슴 찐하게 감상했던 나는 그 이유 때문에 뭔가 친근감을 갖고 아프리카의 탄자니아를 간다.

그런데 비행기가 도착하고 트랩을 내리며 본 아프리카의 첫 인상은 어둠이다. 탄자니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는 Arusha의 관문 킬리만자로 공항이 너무 어둡다. 입국 심사를 받는 실내의 등불도 침침하다. 짐을 찾아 나온 공항 밖은 더 어둡다. 그 어두움 속에서 탄자니아 체류 중 자신들이 안내할 승객을 찾는 현지 여행사 직원들이 까만 얼굴에 까만 눈동자를 번뜻이며 피켓을 흔든다.

그 중에서 사파리 복장을 한 사내와 번들거리는 앞 이마가 튀어 나와 똘똘하게 보이는 키 작은 젊은이가 같이 간 Alan을 보고 뛰어나와 얼싸 안고 서로의 배를 튕기는 Performance를 하며 반가와 한다. 그들은 사파리 가이드 Cloud와 Alan의 일을 도와 주는 Mathew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둘의 차에 짐을 나눠 싣고 어두운 공항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도로는 더욱 어둡다. 가로등 하나 없어 도로변의 모양이나 상황을 전혀 짐작조차 못하는 깜깜한 길을 한 시간 달려 Arusha 시내를 돈다.

그런데 우리가 묵을 Outpost Lodge로 들어가는 간선 도로로 진입하자마자 덜커덩 쿵쾅 사파리 차가 요동을 치고 헤드라이트를 따라 피어오른 뽀얀 먼지가 차창을 덮으며 앞을 가린다. 1880년대 독일 식민지 시절 이후 한번도 보수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길에서 일행은 이리 부딪치고 저리 흔들리며 평탄치 않을 탄자니아 여행을 예감한다.

년도에 따라 다른 환율을 적용하는 US$ 지폐

다음날 만난 사파리 여행사 가이드 Cloud 에게 계약된 금액의 잔금을 Credit Card가 아닌 US$ Cash로 지불하는데 지폐에 인쇄된 발행 년도를 세밀히 관찰하며 2006년도 이전 것은 탄자니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제켜 놓는다.. 탄자니아 중앙은행의 방침이라는 말을 들으며 너무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는다. 내게 킬리만자로 등반을 권했던 Primary Schools For Africa Society 의 Alan Roy 에게서 출발 전에는 Information을 전혀 받지 못했고 도착 후 탄자니아에서 카나다 Credit Card는 쓰지 않는 게 좋다는 충고만 들었는데 난감하다. Alan을 원망해 보지만 엎지러진 물이다. 다행히 가져간 여유 돈 중에서 2006년도 이후 것을 찾아 잔금 지불은 해결했는데 계약된 금액 외 여행경비가 걱정이다.

사파리 여행사 가이드 Cloud 말로는 Private 환전상에 가면 2006년도 이전 것도 환율에서 많은 손해를 보지만 환전 할 수 있단다. 식당이나 소규모 상점에서는 탄자니아 Shilling을 사용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듣고 그를 따라 시내 Private 환전상에 가서 US$ 100.- 2006년 이전 화폐를 160,000 Shillings로 2006년 이후 화폐를 208,000 Shillings로 바꾼다. 같은 돈이 48,000 Shillings이나 차이가 난다. 그들은 외국과 거래하는 업체의 사람들에게 2006년 이전 US$를 팔 수가 있단다. 옛날 60년 70년대 외화 반출이 어려울 당시의 한국, 제도 내 은행이 역할을 못함으로서 남대문 시장 암달러상이 성행하던 것이 생각이 난다.

국립 박물관에 역사가 없다?

사파리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 시내 구경에 나선다. Traffic 에 비해 도로는 좁은데 길거리에 사람들은 넘쳐 난다. 신호등이나 교통 표시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다. 그러니 사람과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같이 움직인다. 원형 로터리를 돌아가는 차량들이 양보나 순서가 없다. 차 앞 범퍼를 먼저 들이밀어 넣은 차가 우선이고 진 쪽은 그래도 빵빵대거나 화를 내지 않고 순순히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차를 디밀 기회를 엿본다.

도로와 도로변 상가지역을 구분짓는 것은 Open되어 있는 깊은 Ditch인데 자동차가 조금만 옆으로 밀려도 그대로 그 Ditch에 바퀴가 쳐 박혀 자동차는 그 Ditch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위험한 그런 거리를 가이드는 곡예하듯 차를 몰아 나중에는 여행 순서인 듯 국립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입구부터 골목골목을 거쳐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목각 조형물과 수공예품, 천이나 종이에 강한 원색 염료를 칠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20150810_225730 (169x300)놀라운 것은 목각 조형물이 둥글고 굵은 기둥을 돌아가며 이곳 마사이 족 전사들과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의 특색있는 모습들을 하나하나 겹쳐가며 높게까지 세밀하게 조각해 놓은 모양인데 하나하나를 조각해서 붙인 것이 아니라 한 통나무를 속속들이 파서 새긴 조각품이다. 그래서 높은 것은 위로 올라가며 좁아지기도 하고 휘기도 한 나무 원형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한켠 날씬한 현대식 4층 건물에는 생존하는 유명한 백인 화가가 그린 아프리카의 풍속도와 야생 동물화들이 전시되어 비싼 값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풍속을 그린 그림들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나 이름없는 화가의 그림이나 한결같이 마사이족 여인들과 전사들의 비쩍 마른 다리와 팔, 목과 얼굴, 몸매의 특징인 가늘고 긴 모양을 부각시켜 그린 그림들 뿐이라서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다. 탄자니아 북부 Arusha 와 Karatu 지역 그리고 Tarangire National Park 지역 정도만 돌아 보았기 때문에 케냐나 우간다 르완다 또는 그 외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도 이곳 마사이족 사람들과 같이 가늘고 긴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그림과 목각품들이 아프리카를 대표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흔히 어느 나라나 어느 지역을 가서 박물관에 들어가면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시대별로 전시해 놓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시대가 없는 단순한 그림 전시장이고 목각 전시장이며 판매처인 이곳 박물관을 둘러보고는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문 앞에 영어로 National Musium 아니라 National Heritage 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이 그 차이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민주적 가치

다음날 우리는 Alan이 짓는 학교들이 있는 Karatu 지역으로 3시간 차를 달린다. 달리는 내내 길 양 옆 지평선 끝이 보이지 않도록 뻗쳐 있는 초원이 모두 마사이 원주민의 땅인 것에 부러움이 가득했고 그 넓은 땅에 돋아 있는 풀이 물기가 없어 메말라 비틀어 질 정도로 건조한 땅이라는 데 그 부러움을 거두어 들여야 했다.

그 건조한 초원으로 마사이 어린이들이 소떼, 양떼 들을 몰고 이동한다. 소떼, 양떼 들은 한 30마리에서 50마리, 많을 때는 한 100마리는 되는 듯하다. 소떼, 양떼 들은 그 메마른 풀 사이사이로 무언가를 뜯기도 한다. 어쩌다 흙탕물 웅덩이가 있는데 소떼 들 양떼 들이 그 물을 마시고 있는가 하면 마사이 동네 여자들이 와서 빨래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 허드렛 물, 먹을 물로 쓰기 위해 양동이에 길어도 간다.

국도 중간 중간에는 경찰들이 길을 막고 지나는 차량들을 조사한다. 이 나라는 국가가 돈이 없어 도로를 순찰하는 경찰 차량이 없고 어느 지역을 맡은 경찰들이 하루 종일 길가에 서서 조사를 한단다. 가이드에게 무슨 조사를 하는 거냐고 묻자 대뜸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돈 걷어 들이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마침 이번 10월에 선거가 있는데 현재 53년째 집권하고 있는 여당이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렇게 경찰들을 동원한다는 귀뜸이다. 어디가나 돈선거 관권선거 불법선거의 양상은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후진국의 공통된 모습인가 보다. 행정부의 장관이란 사람이 총선필승을 외치는 최근 우리나라의 모습이 길거리에서 선거자금을 뜯는 탄자니아의 경찰들 모습 위에 오버랩된다.

나는 여행기를 쓰면서 인터넷을 열어보면 자세히 알 수 있는 정보를 버젓이 자신이 여행하면서 알아 낸 것처럼 쓰는 것을 배척하기에 영국의 입김에 의해 이 나라의 초대 총리가 되고 지금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니에레레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그가 초기에 실시했다 실패해 경제를 파탄내고 국민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게 한 아프리카식 마르크스주의(?)는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정착되지 못한 국가가 실시하려고 하는 마르크스경제 이론이나 사회주주의 이론은 성공할 수도 없고 오히려 일당 독재의 폐해로 인해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탈린의 쏘련이나 김일성 북한의 참상을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나머지 공산국가 들의 모습도 대동소이하고 등소평이 나오기 이전 모택동의 중국도 양상이 같다.

반면 북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을 보라. 민주주의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들이 실시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모든 국가들이 모범 답안처럼 인용하고 따라가려 한다. 사회주의체제를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조차도 입만 열면 북유럽의 사회주의국가를 모범적인 이상국가의 예로 들지 않던가. 이처럼 많은 권력자들이 제한하고 싶어하는 민주적 가치는 어떤 경제체제를 실현하든 간에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Edith Gvora High School 준공식

이번에 동행한 Tony는 나이 80세로 얼마 전에 부인 Edith와 사별했다. 그는 부인과 같이 모은 재산을 값있게 쓰기로 결심하고 많은 재산을 Alan Roy가 탄자니아에 직접 가서 짓는 Primary Schools For Africa Society 에 기증한다. 이번 탄자니아 여행은 그 돈으로 1차로 지은 부인 이름의 학교 준공식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주된 이유다. 그는 많은 돈을 가졌지만 부인과 사별 후 삶이 외로웠고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 단체의 급식 Program 에 가서 식사를 제공 받는 노숙자의 행렬에 끼어 줄을 서는 신세가 된다. 거기서 봉사 단체의 Secretary Beth를 만나 새 삶을 살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녀와 결혼 약속을 하고 이번 여행을 동행한다.

우리는 우리의 돈으로 지은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스포츠 상점에서 축구공을 사가지고 Gongali 마을로 향한다. 그런데 이 길 또한 지도상에 희미하게 표시되는 간선도로이니 포장이 되어 있지 않는 것은 물론 도로가 생긴 이래 전혀 장비나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울퉁불퉁한 상태라서 사파리 차가 요동을 치며 주위를 분간 못할 정도로 뻐얼건 진흙 먼지를 일으킨다. 어떻게 이런 길을 차가 다니는 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구나 이 나라의 먼지는 알갱이가 있는 먼지가 아니다. 아주 고운 밀가루 같은 분말 먼지라 사람의 몸에 닿으면 숨구멍 털구멍으로 흔적도 없이 녹아 들어갈 듯한 그런 먼지다.

길가 원주민들의 집 구석구석에 뽀얗게 켜켜히 쌓여 있어 조금만 바람이 일어도 폴싹 피어 올랐다 다시 쌓이는 형태다. 같이 가던 Alan이 얼굴을 찡그리며 여기서 오래 살면 수명이 단축될 것이 뻔하다고 한마디 한다. 그런데도 그는 대단한 의욕을 갖고 여기서 학교 건물을 짓는 일을 6년 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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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에는 이미 많은 동네 사람들과 학생들이 앉아 있고 Karatu 지역 교육청의 Chief, 교장과 사무장 그리고 학교 선생들, Gongali 마을 Mayor와 부인회장, 그리고 젊었을 때 사자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나이 80먹은 동네 유지 등 이곳에서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우리를 환영해 준다. 건물 입구 학교 이름이 산뜻하게 걸려 있는 아래 연단 귀빈석에 Alan과 Tony 그리고 Beth가 교육청 Chief 과 나란히 앉아 오늘의 영광을 흠뻑 받는다. 그런데 장(長)자 붙은 사람들이 차례로 나와 연설을 하는데 보통 30분 40분 완전히 늘어진다. 연설하는 사람 외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지루하다. 옛날 50년대 60년대 학생시절 높은 자리의 사람들이 긴 연설을 해서 우리가 얼마나 지루해 했던가 하는 기억이 떠 오르고 어쩌면 이런 것도 똑같이 후진성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 같아 잠시 씁쓸한 마음이 된다. 다행히 Alan과 Tony는 간단히 3, 4분 인사말로 끝난다.

끝내고 돌아 오려는데 지역 교육청에서 온 Chief 몬디가 우리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다음날 아침 자신의 사무실에 들려 달라고 한다. 다음날 출근시간에 맞춰 찾아간 교육청에서 한동안 우리를 기다리게 해 놓고 그가 한 말은 더 많이 Donation을 해 달라는 것이다. 해당 공무원이 당연히 고마움의 표시를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왠지 그 자세가 정중하지 못했던 것이 별로 기분좋은 아침은 아니었다. 어느 관공서든 책임자의 자세는 필요한 사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일과 순위가 정해진 사업의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의 방안을 찾아내는 일일 것이다. 그 일은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들의 동정심이라는 불확실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예산, 또는 차관이나 외국 자본 같은 확실성이 보장되는 것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 날 바로 교육청 사무실 벽에 걸려있던 탄자니아의 국부라는 니에레레의 초상화를 본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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