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다문화주의의 한계

<송선생 교육/이민 칼럼 96> 캐나다 다문화주의의 한계

글/사진 제공: 송시혁 <송학원 원장, seahsong@gmail.com>

글/사진 제공: 송시혁 (송학원 원장)

캐나다와 미국은 대표적인 다문화(multiculturalism, 多文化) 국가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다문화 정책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미국의 문화를 ‘melting pot (용광로)’으로 설명한다. 여러 민족의 여러 문화가 뒤섞여서 미국 문화라는 하나의 용광로 속에서 완전히 녹아서 용해되고 합쳐진다는 뜻이다. 반면에, 캐네디언들은 캐나다 문화를 ‘mosaic (모자이크)’로 묘사하면서, 미국의 melting pot과는 차별화 하고자 한다. ‘mosaic’는 각 문화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유지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간다는 뜻이며, 미국의 역사학자 Diane Ravitch에 따르면, melting pot은 ‘공존 (共存)’을 뜻하는 반면, mosaic은 ‘자치 (自治)’를 의미한다.

하지만, 유럽의 여러 문화를 계승, 융합하던 미국의 문화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유럽 이민인구가 급증하고 서구 문화와 다른 이민자의 증가로, 서구의 동일한 문화를 융합하던 melting pot은 더 이상 미국 문화의 특징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근래는 많은 미국인들이 melting pot보다는 salad bowl (샐러드 그릇)로 그들의 문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샐러드를 담는 그릇에 양파, 양상추, 샐러리, 토마토, 오이, 닭가슴살 등을 섞어 놓지만, 양상추는 양상추, 토마토는 토마토의 각각 고유의 맛을 유지하면서 샐러드의 맛을 내는 것이 미국의 문화를 더 잘 설명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의 문화를 샐러드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캐나다의 모자이크 문화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캐나다와 달리, 다문화주의 국가라고 볼 수는 없는 미국

여러 민족의 문화가 섞여서 ‘다문화’를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두 국가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다문화를 인정하고 지원한다 할지라도, ‘다문화주의’를 국시로 선언한 적은 없다. 오히려, 미국은 여전히 서구 문화를 대표하는 국가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꽤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은 미국의 문화적 바탕이 유럽 문화를 바탕으로 한 로마 제국의 정통적 계승자라고 여기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전통적인 미국의 대학들이 우등 학위 명칭을 라틴어 명칭 (Summa Cum Laude, etc)으로 한다든지, 하버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졸업생 대표가 라틴어로 하는 등, 미국의 정신적 뿌리는 로마제국의 문화와 전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은근히 강조하기도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도 로마제국의 시민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계승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캐나다는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황실을 지지한 식민지 사람들, 즉 ‘왕당파’라는 이데올로기(ideology)를 가진 사람들이 대거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영국과 영국문화에 속한 국가임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과감하게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다문화주의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캐나다의 국가적 역사적 사연이 있다.

캐나다 다문화주의의 배경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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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캐나다는 다문화주의 국가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캐나다도 1960년대까지는 퀘벡의 프랑스계에 대한 차별이 심했고, 영국계 민족의 기득권을 위한 타민족 문화의 통합 (즉, melting pot) 및 동화(assimilation) 정책을 폈으나, 프랑스계의 퀘벡 독립운동이 심해지면서, 퀘벡의 캐나다 연방 이탈 위기로 이어지는 이민족간의 분열과 갈등 가능성으로 국가 분열의 파국적 위기로 까지 치 닺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퀘벡이 독립하면, 다른 주들도 캐나다 연방을 이탈할 수 있다고 판단, BC주와 알버타주 주민이 원한다면 두 주를 미국의 주로 받아 줄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1970대에 들어오면서, 캐나다는 영국계 백인들의 기득권 고수를 위한 동화정책을 포기하고, 퀘벡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 불어를 영어와 대등한 공식어로 인정했다 (1969). 하지만, 퀘벡이외 지역에서는 프랑스계 인구를 능가하는 이민자 민족들이 많았고, 결국, 트뤼도 자유당 정부는 다문화주의를 국시로 하고 (1971), ‘The Canadian Charter of Right and Freedom’ 법 제정(1982)을 통해서,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인 문제를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였다.

따라서, 캐나다는 국제 정치적, 문화,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 밖에 없지만, 캐나다 국가의 헌법과 정책은 ‘다문화주의 국가 캐나다’라는 분명한 identity를 기치로 미국 문화와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미국의 대도시들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백인 위주의 도시와 지역은 공공시설도 깨끗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의 공공시설은 너무나 지저분하고 방치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반면에 캐나다의 경우, 도시 내에서 특별히 백인 지역이 존재하지도 않고, (오히려, 밴쿠버의 리치몬드등 일부 지역은 중국계 이민자의 도시로, 최근에는 여타 지역보다 더 번성한 느낌이다.) 인구 구성과는 전혀 무관한 도시 계획에 따라 공공시설 투자가 균형 있게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81년 캐나다 이민자들의 구성이 영국, 이태리, 미국, 독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도, 폴란드, 중국, 유고… 순이었던 것이, 2001년에 이미, 중국,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한국, 스리랑카, 미국, 이란, 유고, 영국 순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아시아 지역의 경제 성장이 있었던 것도 영향이 이었겠지만, 중국, 인도, 한국을 제외하고도, 비백인 인종의 캐나다 이민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 것은 다문화주의 정책에 힘입은 것이 분명하다.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매우 효과적이고 성공적이어서, 1950년대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침을 뱉으며 차별했던 백인 이민자들이 실제로 있었나 싶을 정도이며, 1970년대 이후부터는 각 인종 또는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시설 (예를 들어서, 한인센터) 등을 건설하는데 막대한 국가적인 재정 지원도 아끼지 않았던 것을 한인 교민들도 직접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도 캐나다에서는 인종적, 문화적 차별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것도 다문화주의가 보장된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의 환경을 보면 캐나다 이민은 참으로 올바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미래는 보장되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70년대에 국내 및 국제 정치의 상황에 따라 급진적으로 변한 캐나다를 역(易)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생존에 따른 선택은 다수에 따른 것이지 사실은 소수나 개인의 권리와 이익은 무시되어 온 것이 세계의 역사이다.

다문화주의 한계

‘퀘벡의 테러조직인 ‘퀘벡독립전선(FLQ)’이 영국의 무역부 장관과 퀘벡의 노동부 장관을 납치해 결국 영국 장관을 살해하였다…..’ 1970년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활성화가 되기 전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당시 수상이었던 드뤼도가 몬트리올에 군대를 보내 500명의 프랑스계 퀘벡인들을 체포하고, 퀘벡의 프랑스계들의 독립 요구 시위는 연이어졌으며, 분리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

다민족 다문화 국가는 단일민족국가에 비해서 많은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과거의 캐나다, 인도,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다민족 국가들의 민족적 갈등, 테러와 독립요구의 반목 등은 국가의 사회적 통합과 융화를 어렵게 했다.

캐나다의 경우, 퀘벡 프랑스계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이중언어를 공식언어로 선택하고, 다양한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폄으로서 이러한 갈등을 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지만, 이질적 문화와 다른 인종적 문제의 잠재적 부정적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연대감 증진과 공동의 문화 창출이란 국가적 노력의 지속은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지속적인 국민 교육을 통한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상호 인정과 관용의 전통을 구축하고, 서로 다른 문화집단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점진적 공동의 문화 창출 (다문화 학자, Raz)’을 위한 국가적 노력과 투자가 지속되지 않고서는, 현재의 캐나다 다문화주의는 언제든지 실패하고 돌아설 수 있다.

최근 서구의 각 나라들은 이민자들을 통제하는 정책으로 강화하여, 자국에 필요한 자들만 이민을 받아들이는 추세와 경향이 국제적 현실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국가의 경우, 아프리카 난민의 불법 이주가 급하게 증가하는 것이 이유라고 하지만, 캐나다와 비슷한 시기에, 백호(白好)주의에서 다문화주의로 전환했던 호주도 이민의 폭을 약 15년 전부터 강화해오기 시작했다. 결국, 2007년 호주 총리 John Howard는 ‘이민 다문화부’ 명칭을 ‘이민 시민권부’로 바꾸면서, “모든 호주인들은 이민자들이 호주땅에 왔으므로 호주인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즉, 호주의 이민정책은 다문화주의를 포기하고 이전의 동화정책으로 회귀함을 의미한다. 사실, 캐나다의 최근 이민법 개정을 살펴보면, 캐나다 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다량 유입을 경계하고 통제하는 경향으로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영어권이 아닌 이민자들의 시민권 취득마저 어렵게 하고, 지나친 테러 걱정을 핑계로 시민권 취득 이민자의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는 여러 정책마저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을 보면서, 캐나다도 호주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한인 2세와 3세들을 위한 우리의 노력

최근 이민자들은 기존의 이민자들에 비해서 영어능력도 뛰어나거나, 캐나다에서 학업을 하거나, 캐네디언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면서, 캐나다 사회에 빠르게 적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자녀들이 캐나다 사회에 쉽게 동화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다. 하지만, 캐나다의 주류 인종은 여전히 백인계이며, 최근에는 비백인계 유입을 통제하는 이민정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가의 정책은 다수와 기득권층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며, 캐나다에서도 다문화주의가 장래에 계속 보장 될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수 인종 중에서도 소수인 한인 캐네디언은 자기의 평등한 권리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캐나다 사회에 동참하고 기여하려는 노력과 함께, 미국의 유태계처럼 분명한 민족적 자존감을 가지려는 노력도 지속적이어야만 한다. 만약, 우리 1세대와 1.5세대가, 캐나다 정치와 정책에 무관심하던지, 자녀들의 교육에 열의를 갖지 않는다면, 한인 캐네디언 자녀들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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