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

<문학회> 내실

한상영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이명박이 서울 시장을 하면서 의욕에 차서 벌인 핵심적인 사업이 청계천 복원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저분한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고가도로까지 만들어 교통을 원활하게 한 개발시대의 상징이었는데 복개 후 30년, 1900년대에 와서 복개 구조물과 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습니다. 속전속결 군대식 개발독재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회 일각에서 부터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는 것을 이명박이 잽싸게 정치 아젠다로 삼고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개발시대의 아이콘답게 짧은 시장 재임기간 안에 복원을 끝냈습니다. 도심을 흐르는 개천과 깔끔하게 정리된 천 주변을 접한 많은 시민들이 열광했고 그 후광으로 이명박은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야말로 개발시대의 행운아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청계천이 그에게 한 나라를 주무를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어 준 것이 고마워 그는 호를 청계라고 지으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뭐든 만들어 놓고 보면 사람들은 열광하게 되어 있다는 신조가 생긴 것입니다. 남한을 종단하는 운하를 파겠다는 공약을 내 놓은 것입니다.그런데 그게 너무 이치에 맞지 않는 발상이라 반대가 심했습니다. 원래 운하란 멀리 돌아가야하는 바다와 바다사이를 잇는 짧은 거리의 낮은 지형을 골라 횡단하는 사업인데 바다를 돌아가는 거리보다 더 먼 지역, 그것도 높은 산들을 종단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업을 강행하겠다니 아무도 찬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대단한 토목공사를 벌이고 나면 그 결과를 보고 나중에 국민들이 열광할 것이라는 허황된 자기 도취에 빠져 4대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산천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하고 무지한 아집으로 지금 한반도를 흐르는 아름답던 큰 강들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수영할 수 없는 물이 되었고 물고기가 살아남지 못하는 물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25년만에 찾은 한국, 고등학교 친구가 자랑스러운 듯 복원된 청계천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온통 세멘트로 발라진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세멘트로 발라진 우중충한 모습의 인공 수로로 보였습니다. 더구나 시궁창냄새까지,..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하루 12만톤으로 한강에서 양수기로 퍼올리는 방식이라 물값과 전기값으로 엄청난 세금을 낭비한다고 합니다. 분수대, 조명시설, 벽화,산책로, 기타 초현대식 조형물들로 인해 화려하게 연출해 놓은 현대식 조경시설같은 느낌만 받았습니다. 세멘으로 발라 놓은 물 바닥 밑에는 3중으로 콘크리트 차수막이 쳐져 있어 물이 땅으로 스미는 것을 방지하였답니다. 그런 환경에서 물고기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박경리선생이 살아 계셨을 때 어느 모임에서 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청계천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원주에 있는 토지문학관에서 심포지움까지 개최하며 복원을 독려한 그 일을 그렇게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아는 사람들이 주관하여 환경과 생명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사업이어야 할 것을 개발독재시대의 사고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졸속으로 이루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들의 탐욕을 도와준 꼴이 되었다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역사와 문화와는 동떨어진 현대식 조형물이 되버렸다는 것이었지요. 더구나 복원시 발굴된 오간수문의 유구들, 청계천 1가와 2가에서 발굴한 수백미터 길이의 조선시대의 석축들, 이런 귀중한 우리 문화재가 중랑종말하수처리장 공터에 방치된 채 훼손되고 있는데 그 사업으로 영달을 얻은 자는 문화재가 훼손되건 말건 가버렸고 다음에 온 사람도 역사와 문화에는 문외한들 뿐이었으니 박경리선생께서 그런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말거나 역사나 문화 생태와 환경, 생명등 고차원적인 용어들을 알 필요가 없는 많은 시민들이 칼라플하게 솟구치는 분수와, 칼라플한 벽화들, 칼라플한 조명으로 장식되는 인공폭포와 현대식 수변공간을 보며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고 즐기는 장소가 되고 있으니 많은 지식인이나 학자들이 한탄을 한들 어떻든 성공한 토목공사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개발시대, 뜨거운 사막에서 고생하며 외화를 벌어 들인 전쟁시대 사람들 뿐만이 아닙니다.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며 돈이라는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모든 불법적인 과정이 용서되는 사회적 암묵이 다음 Generation 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돈이라는 실체 앞에서 역사니 생명이니 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광경만 있으면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데 눈에 잘 들어나지 않는 내용을 충실히 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가 대세였던 시대가 너무 길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고방식은 한국을 떠나 사는 이민사회 내에도 어쩔 수 없이 뿌리가 깊게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밴쿠버에 있을 때 너무 외형적인 것을 추구하느라 이런저런 잡음이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곤 했습니다. 어떤 한인단체에서 그 단체의 규모에 비해 너무나 버거운 대단위 사업을 발표하고 기금을 모금했습니다. 이명박처럼 세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형편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몇 안되는 회원으로 대 사업을 할 큰 기금을 확보하기 어렵다 보니 지지부진해질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사람에게 사업이 넘어가고 인계받은 사람은 어차피 기금확보가 어려우니 적극성을 띄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나마 걷힌 돈은 그저 공돈 같았는지 매년 불상사만 일어나게 되더군요.
이런 일은 그저 조그만 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40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50년이라는 일천한 역사를 가진 싱가폴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그래서 쉽게 싫증 나는 그런 현대식 구조물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그걸 4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흉내 내고는 복원했다고 열광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40년밖에 되지 않은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인공 조형물을 본떠 만들어 놓고 열광한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실이 없으면 자존심도 없는 것인가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죽기 전에 한번은 로마나 파리, 런던을 여행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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