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자녀의 한국어 교육

<송선생 교육칼럼 57> 이민자 자녀의 한국어 교육

<이민과 교육 4>

어떤 빅토리아 교민 자녀가, 처음 한국에 가서 해물탕을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다음 날 식당에 가서 같은 음식을 또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다가 어렵게 생각해낸 것이 …….. “아줌마, 음… 괴물탕 주세요!”

이민을 온 후, 어린 자녀들은 영어를 배우는 속도 만큼 빠르게, 모국어를 잊게된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자녀들도 취학 전에 배운 한국어를, 학교에 들어가면서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를 보게된다. 결국,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1.5세 자녀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국,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점점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민 오기전에 알게된 지인(知人)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이민을 오기 반 년전에 Ontario의 작은 마을로 이민을 갔다. 우리 가족이 이민을 오고, 캐나다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던터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어보곤 했다. 달이 갈 수록 그 친구의 비지니스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들으면서 반가왔다. 우리는 서로의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궁금해하면서, 애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해가 지나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친구의 자녀들도 이제 꽤 커서 중학교에 다닐 즈음이다. 안부가 궁금하여 전화를 거니, 그 친구는 없고 대신 아들이 받았다. “아빠 계시니?” “Who’s calling?” “…. 음, 아빠 친구다.” “His friend? …… Hold on!” 변성기가 지나고 있는 아들의 목소리는 다 큰 어른처럼 굵었다. 그리고…. 나는 약간 기분이 안 좋았다. 좀, 상냥하지도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please도 붙이지않는 말투가 rude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 친구가 전화를 받고, 이런 저런 말을 하다가 자라는 애들 얘기가 나왔다. “이제 첫째가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린 것 같군요.”

“그렇죠, 우리 애는 이제 캐네디언이 다 되었죠. 한국어는 쓰지도 않을려고 해요. 내가 비지니스 때문에 애들에 대해 많이 신경쓰지 못 했지만, 애들은 이제 이곳에 너무 잘 적응하고, 이젠 네이티브가 다 됐죠. 이민와서 문제는 우리 어른들이지 애들은 아닌 거 같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렇죠. 그런데… 내 생각엔 애들이 한국어도 잊지 않고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애들 한국어 공부도 시키려고 하는데 쉽지 않지만…다행이 이곳에는 한글학교도 있고…. 한인교회도 있고해서 …”

“….한국어는 신경 안써요. 여기와서 애들한테 한국말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자… 바빠서 다음에 통화합시다.”

“아, 예.” 그 후에 그 친구와는 몇 번 더 전화를 시도 했지만, 거의 통화를 하지 못했고, 결국 연락이 끊어졌다. 그 후에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후회했다. 안그래도 비지니스로 바쁘고, 한인 커뮤니티도 제대로 없는 작은 마을이라,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싶어도 쉽지 않은데…

이민 온 어린 자녀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은 다른 어떤 교육에 비해 정말 쉽지 않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교재도 없고, 공부 자체도 싫은데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는 한국어에 관심이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1.5세대는 물론 2, 3세대 등 부모나 조부모가 한인이면,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어 공부는 단순히 언어 공부가 아니라, 정체성(正體性)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한국어 실력이 좋아진 편이지만, 필자의 두 딸들도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을 다닌 후, 한국을 떠났으니 한동안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첫째 딸아이 경우는 2학년을 마치고 한국을 떠난 후, 한국어를 점점 잊어버리더니, 8학년때는 한국어를 가장 못하는 시기가 되었고, 캐나다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공부도 가장 소홀히 했던 것 같다. 한인교회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니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설교를 이해할 수 없고, 특히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 한다고, 이제 막 유학 온 친구들이 ‘바나나’라고 놀린다고 신경질을 내곤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럴 수록 한인교회를 고집했다. 그나마 한인 친구들을 만나고 얘기할 수 있는 곳이 한인 교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다시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자연스럽게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한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여전히 좀 더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들과 말싸움이 있으면 자기가 한국어가 어눌해서 당하는 것을 분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는 애들과는 영어를 쓰지 않고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한인 교회 중고등부에도 열심히 나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는 결국, 한인 교회에 오는 캐나다 노부부를 위해 설교 통역을 도와주면서, 통역 실력도 급성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목사님의 설교 원고를 미리 받아서 읽고 겨우 통역을 하는 정도였는데 (한국어 설교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지금은 동시 통역이 가능한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좋아졌다.

둘째 딸은, 사실, 여전히 한국어가 많이 어눌하다. 성격도 비교적 내성적(introvert)이라, 교회를 빼고는 초,중,고등학교 재학 동안, 한인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인교회에서 중고등부 회장을 맡으면서,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순번이 정해져 있는 기도 준비자가 갑자기 결석을 하게되면, 회장이 대신해야 하기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성적이고 말이 없고, 한국어도 어눌한 우리애를 회장으로 선출해준 교회 친구들이 고마왔다. 그리고, 12학년 졸업 즈음, 교회학교 졸업식에서 우리 애는 당당히 한국어로 졸업생 대표 답사를 하게 되었다. 대학에 간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한국어 설교 번역을, 한영 사전을 찾아가며, 틈틈히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민자 자녀들이 우리 애들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한 교민은 대학 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 일을 하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 교민을 만날 때마다, 아들에 대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곤 한다. 빅토리아에서 태어난 아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는 한국계 캐네디언(Korean Canadian)이다”라는 의식을 심어주었더니, 비록 한국말은 못했지만,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한국인에 대한 긍지가 대단했다고 한다. ….. 정확히 말해서 한인교회를 다니기전까지 말이다. 처음 아들을 데리고 한인교회를 갔던 날이 생생하다고 했다.

갈 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팔짝 팔짝 뛰어 가면서, 한인교회에서 처음 만날 한인 친구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교회가 끝나고 돌아 올 때는 어둡고 몹시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I will never, ever, go to a Korean church, again.” “왜?” “Korean kids made fun of me because I couldn’t understand Korean. They really suck!”

그 교민 분은 가장 후회되는 것이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한 애들과 교회 (유초등부) 교사에게 따지지 못하고, 아들을 더 이상 한인 교회에 데려가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인 며느리를 보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분은 영어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외국인 며느리에게 더욱 다가가지 못 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교민 분이 racist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이민 온 자녀들이 한국어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을 대하는 한인들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 그들이 어눌하지만 노력해서 한국말을 하다 실수를 하면 재미있다고 웃는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창피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할 때, 우리가 영어를 말할 때, 발음이 안 좋다거나, 잘못된 단어나 표현법을 쓴다거나, 앞뒤를 이해하기 힘든 문장을 말했을 때, 캐네디언들이 웃겨 죽겠다고 하면, 우리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심지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다고 핀잔을 준다면, 아마도 상당한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녀들은 한국어를 할 때, 그런 일을 수시로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 캐나다에 아주 어릴 때 이민 온 자녀가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바로 내 앞에서 본 적이 있다. 예배가 끝나고 친교 다과를 먹으러 탁자에 앉았을 때, 처음 본 고등학생을 보게 되었다. 인상이 아주 착하고 잘생긴 학생이었다. “이곳은 나이 드신 분들이 앉는 곳이니까 저 쪽에 네 친구들이 있는 쪽에 앉으면 어떨까?” 분명히 ‘예’라고 대답했지만 그 아이는 그냥 미소만 지으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시 한 번 설명을 하고 있는데, 또래의 몇 명 아이들이 내게 왔다. “아저씨, 제, 아무것도 알아 듣지 못해요. 완전 바나나예요” “얘들아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괜찮아요, 저것 봐요, 지금 말하는 것도 이해 못하고 웃고 있잖아요. 키득키득….” 순간 그 아이의 얼굴은 벌게 지면서, 미소는 사라지고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와, 아무것도 모르는 그렇게 놀리는 아이를 보면서 참 마음이 아려왔다. 한인들은 너무 multicultural mind가 없는 것 같다. 물론 교육을 받아 본적도 없고, 일부 한인 교회 교사나, 한국 학교의 교사들 마저도 그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떤 교민 자녀들은 혹시 이렇게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아예 본인이 캐네디언이라고 생각하고 캐나다에 살면된다고. 그렇게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본인의 부모와 친척이 캐네디언이 아니기에 캐나다에서 네트워크가 그 만큼 좁을 수 밖에 없고, 세계적인 규모를 가지는 한국의 경제규모와 무시할 수 없는 한인 지역 커뮤니티라는 잇점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경계인, frontier man 또는 marginal man으로 한 쪽의 잇점을 버리면, 다른 한 쪽의 입장에서는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빅토리아 한글 학교에 대해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한글 학교가 가르치는 한글 교육은 그 아이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심도 깊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반을 줄 수 있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 두 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글:송시혁 (송학원 원장)

빅토리아투데이 2013년 11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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