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들의 영어

<송선생 교육칼럼 56> 어린 자녀들의 영어

이민과 교육 3

어느 빅토리아 교민의 이야기다. 캐나다에 막 이민 온 어린 아들이 처음 캐네디언에게 한 말이 ‘Excuse me’라고 한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니?” “응, 열려라 참깨란 뜻과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아빠가 비행기 탈 때나, 공항 같은 데서, 사람들이 앞에 많이 서 있을 때, Excuse me라고 말하면, 다들 비켜 주던데……”

캐나다에서 영어 교육을 받은 어린 학생들은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한 학생들과는 영어 능력의 차원이 다르다. 어른들의 경우는 한국에서 보다 영어 실력이 늘었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거의 한마디도 못 하던 아이들이 이민(또는 조기 유학)을 와서 2년만 지나면 영어가 술술 나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 두 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 영어를 대한 우리 애들

한국을 떠나기 전, 둘째 애는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다. 우리 가족은 이민 오기 일년 전, 필리핀에 있는 국제대학원 (AIIAS) 캠퍼스내 가족 기숙사에서 지냈다. 대학원에 도착한지 3일째, 우리 애들이 처음 international school에 가던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 교복을 입고 집에서 나와서, 첫째와 둘째는 손을 잡고 캠퍼스 잔디를 가로질러, 대학원 부속 초등학교를 향해서 뛰어가는 모습을 기숙사 아파트 창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애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달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애들이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창 밖 캠퍼스를 바라보면서 애들을 기다리는데, 우리 둘째 애가 다른 애들 보다 먼저 학교에서 나와서 뛰어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큰 소리로 대성통곡을 하면서 말이다.

“아무도 한국말을 쓰지 않았어, 으~앙! 친구들도 선생님도 영어말만 하고 내가 하는 (한국)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엉~엉” 필리핀에 가족들이 오게 된 것도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지만, 국제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둘째에 대해서는 미처 이런 환경에 대해서 한마디도 설명한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3학년에 입학하는 첫째 애만 걱정했고, 둘째는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에 가는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1학년은 어차피 A, B, C부터 배울 것이기 때문에, 둘째는 자연히 영어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둘째가 당연히 외국에서 공부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애는 외국인들도 당연히 한국어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는가 보다. 적어도 선생님은… 더욱이, 우리 부부 모두 대학원에 다녔기에, 처음 등교하는애들과 함께 학교에 가주지도 못했다. “당연하지, 한국사람이 아니니까…그러니까 너가 지금부터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면돼…” “우아~앙” 더 서럽게 눈물을 펑펑 쏟는 둘째를 보고 우리는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해명할 길이 없었다.

첫째 애도 한국을 떠나기 3개월전부터 영어 회화 공부를 했으니, 사실 상, 영어를 거의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첫째는 한국에서 처음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닐 때 능청을 떨어 나를 한참 웃기게 했다.

영어를 배운지 3일만에 외국인을 보자,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Hi, how are you?” 어린 여자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로 인사하는 것을 듣고는 그 외국인은 놀랍고 반가운 목소리로 대응했다. “H~~I, gooood! Can you speak English?” 대답 대신에, 우리 애가 말을 계속이어 갔다. “My name is Soyeon. Nice meet you!” “I’m Steve. It’s a pleasure to meet you, Soyeon.” “………” “How did you learn English?” “………..” 사실은 알아 듣지 못하기에,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면서, 뭔가 바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행동하면서…. “앗, 빨리 가봐야겠다. Bye!”

한국을 떠난 지 2년이 지나자, 우리 애들은 둘 다 영어를 곧잘 했다. 특히, 둘째 애는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언니랑 싸울 때는….

어른들 보다 훨씬 더 빨리 영어를 배우는 자녀들

이민을 오면 애들 걱정은 말고, 자신(=어른) 걱정이나 하라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들이다. 한국을 떠나서, 필리핀을 거쳐서 캐나다에 이민 오면서, 우리 애들은 아빠인 나를 굉장하다고 생각했단다. ‘아빠는 영어를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새로운 환경에서 뭔가 불안한 애들은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빠를 보면서 든든했다. 특히, 대학원에서 MBA 수업을 위한 presentation 준비를 하는 아빠를 보면서, “아빠는 캐나다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자신 있게 영어로 연설을 할 수 있어?”라고 묻기도 했다.

3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아빠가 영어를 할 때마다 불안해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떨 땐 옆에서 조언도 한다. “아빠, please~해야지…” 이 때쯤 되면, 애들은 ‘버터’를 바른 것처럼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한다. 영어는 물론, 한국말을 할 때도, 영어 발음을 사용한다.

내가 한국말로 긴 설명을 해주면, 눈을 껌벅거리면서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그럼, 다시 영어로 설명해 본다. 하지만, 애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빠, 그냥 한국말로 설명해주면 안돼요?”

이번에 반대 상황에서 애들이 한국말로 복잡한 자기 상황을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말이 어눌하니, 자기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답답해 한다. “그냥, 네가 편한 영어로 차근차근히 설명해봐. 뭐든지 할말이 있으면, 주눅들지 말고 영어든 한국말이든 자신 있게 말해” 우리 애는 열심히 영어로 자기의 처지를 설명한다. 그런데, 너무 빨라서 내가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천천히 말해줄래?” 다시 설명한다. 어린애가 말하는 영어 발음은 더 어려운 것 같다. “방금한 말, 다시 해봐” “blah, blah, blah ~~” ….. “뭐?” “….. Whew….. Never mind.” 우리애가 설명하는 것에 지쳐서, 그만 하잔다. 순간 ‘열 받은’ 나는 돌아서는 애를 불러 세웠다. “뭐야! 하던 말은 계속해야지. 다시 말해, 아빠도 그쯤은 알아들어~.” 이쯤 되면, 딸 애는 화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하기 싫은 얘기를 억지로 하고 있다. “너 그렇게 눈을 치켜 뜨고 어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하는 거 아냐…” 괜한 트집을 잡는다. “아빠가 학교 선생님하고 말할 때, 눈을 쳐다보면서 말하라고 했잖아요… ” “…아니, 그게 아니라… “ 이쯤 되면, 아내가 애 편을 든다. “왜 애를 헷갈리게 해요!”

어린 자녀들의 영어 공부

어떤 교민의 얘기가 애들이 캐나다에 와서 죽도 밥도 안 된다고, 즉,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못 한다고 푸념한다. 독서를 잘 하지 않는 자녀한테 책 좀 읽으라고 하니까, 책을 후다닥 읽는 둥 마는 둥 끝내기에, 내용을 설명해 보라고 했단다. 그런데, 도대체 읽은 것 같지도 않게 설명을 좀 하드니, “응–, 기억이 잘 않나”라고 했단다.

그 교민의 이야기는 우리 자녀들 영어 교육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 자라는 어린 자녀들의 언어적 학습 능력 발달에 관한 심각한 문제이다. 이민 1.5세는 ‘경계인(境界人)’이다.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 하면 좋겠지만, 둘 다 문제가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이민 1세보다 영어를 훨씬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영어는 그들에게 2nd language로 많은 한계를 준다.

이런 문제는 첫 째,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가족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나 주위의 어른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는 가운데 많은 모방을 통해서 언어적인 능력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더 심각한 것은,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민자 자녀들은 대부분 영어 공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민을 왔고, 여러 해를 캐나다에 살았다고 해서, 고급 영어가 저절로 학습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1.5세뿐만 아니라, 2세 학생들도 고급 영어 단어를 외우고 체계적인 리딩과 작문 공부를 꾸준히 해야만 한다.

세 번째 이유는, 영어 학습 방법의 문제이다. 어린 이민 자녀들(조기 유학 자녀도 포함)의 교육 방법은 한국은 물론, 캐나다 학생들과도 많이 달라야 한다. 여전히,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법과 단어 공부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리딩과 작문을 한국식으로 공부하는 것은 어린 학생들의 무한한 언어적(영어) 능력과 가능성을 없애는 결과를 가져오기가 쉽다. 영문을 읽은 후, 한국말로 설명해 보라고 한다던 지, 문법적으로 분석한다던 지, 에세이를 특정 쟝르(Genre)나 한국식 표현 방식에 얽매이는 식의 공부를 시킨다면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 올 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조기 유학 또는 이민을 온 자녀들은 어른들에 비해서 영어 습득 능력이 무척 빠르다. 하지만, 외국어를 처음 대하는 어린 자녀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른들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어린 자녀들이 무작정 캐나다의 영어 환경에 방치되다 보면, 영어도 한국어도 모두 문제가 있는 상태로 성장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반면, 꾸준히 영어 능력 습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노력한 1.5세 자녀들은, 오히려 캐네디언들 보다, 훨씬 더 고급 영어 능력을 갖춘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이 칼럼을 통해서, 나 자신과 지인들의 이민 생활, 특히, 어린 나이에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자라고 공부하는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글이 이민과 교육에 대한 작은 아이디어라도 줄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내 지식의 한계로, 많은 도움을 주기에는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自認)합니다. 하지만, 이 칼럼이 재미있는 픽션(fiction, 허구)이 아닌, 실제 우리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지도록 최선을 다 하고자 합니다.)

글: 송시혁 (송학원 원장)

빅토리아투데이 2013년 11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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