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과 유학의 필수, 영어 공부

<송선생 교육칼럼 55> 이민과 유학의 필수, 영어 공부

 이민과 교육 <2>

이 칼럼을 통해서, 나는 자신과 지인들의 이민 생활과, 특히, 어린 나이에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자라고 공부하는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 중에는 많은 교민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이 때로는 이민과 교육에 대한 작은 아이디어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지만, 내 지식의 한계로, 도움을 주기에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서툰 문장과 글의 구성이 조잡하더라도, 이 칼럼은 재미있는 넌픽션(non-fiction, 허구)이 아닌, 실제 우리의 모습으로 그려지도록 최선을 다 하고자 한다.

이민 오기 전 나의 영어 background

이민 오기 전, 업무상 (유통 및 전산화 기획 업무와 외국인 컨설턴트 그룹 코디네이터), 매일 새벽에 영어권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영어 회화 학원 (삼육어학원, SDA, 하지만 나는 Seventh-Day Adventist 교인은 아니다)을 열심히 ‘다녔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었기에 내 영어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업무 차, 처음 영국 출장을 가서는 restaurant에서 steak도 주문을 못했다. Waitress가 내 발음을 알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I would like to have beef 스테잌(‘크’ 발음 전혀 없이)’라고 말하자, waitress는 ?Pardon??이라고 했다. 이번엔 좀 더 목소리를 크고 자신 있게, ?스테잌(역시 ?크? 발음 없이), please’를 다시 말했다. 그런데, waitress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I am very sorry but, I can’t understand. Could you please repeat it, again?’ 난 좀 화가 나서, 다른 말 다 생략하고 그냥 ‘스.테.이.크’라고 음절마다 끊어서 말하면서, 특히 ‘크’ 발음을 강조하며 더 큰 소리로 말했다. Waitress는 완전 홍당무가 되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손님이 화가 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몹시 당황해 했다. ‘아, 정말 steak도 못 시켜먹것네’ 몹시 낙담한 나는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내가 혼자 하는 말을 알아들은 웨이트리스가 갑자기, ‘Oh, steak!’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1년간 새벽마다 열심히 다닌 영어회화 학원이 완전 쓸모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실전 영어 경험이 없는 내가, 보름간의 출장 기간 중, 혼자 있는 외로운 런던의 밤을 달래고자 위스키를 마시러 호텔 라운지 내려갔다, 우연히 만난 영국인 부부와 밤 늦게까지 한국에 대해서 얘기도 했고 (아마도 술기운으로),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있는 넬슨 제독 동상과, 또 다른 장소에 있던 워털루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웰링턴 장군 동상을 보면서, 영국 파트너사 직원들과 영국 역사에 대해서 즉석 토론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실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영어로 말할 때는 훨씬 쉽다. 초등학교 때, 나폴레옹에 관한 모든 사실에 관심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이민 온 사람들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쉽게 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잘아는 분야에 대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본격적인 유학 준비기간

회사를 그만 두고 약 1년간 캐나다 경영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토플과 GMAT(경영대학원 입학시험) 학원도 다니면서, 도서관에서 영어공부에 전념했지만, 내가 원하는 점수가 쉽게 나오지 않아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뒤 늦게 영어 공부를 한 나이 탓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토플 점수가 겨우 나온 후, 캐나다 이민 비자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한국에서 특별하게 할 일도 없었기에, 필리핀에 소재한 국제 대학원(AIIAS)에서 약 10개월간 머물렀다. 그 대학원에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온 교수들이 많았으며, 대부분 학생들은 필리핀인 보다는 한국, 중국, 일본 및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당연히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영어는 좀 처럼 늘지 않아, 수업은 물론 교수나 학생과의 대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캐나다에 이민을 오게 되었고, 동시에 목표로 하던 토플 점수와 GMAT점수로 UVic MBA에 입학하게 되었다. 특히, 주정부의 지원 등으로, UVic MBA 프로그램은 당시 캐나다에서 상당히 저렴했기 때문에 꽤 경쟁률이 높았다. 한국 토플학원에서 같이 UVic을 목표로 하던 지인들이 UVic을 불합격한 후, 대신 McGill과 Dalhousie등에 가면서 나를 꽤 부러워했던 것 같다.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

UVic MBA 첫날 수업은 내게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자료도 없이 강사가 구술로만 토픽을 설명하면서 조별로 즉석 presentation을 하라고 한 것이다. 갑자기 조별로 5분이라는 짧은 토론을 한 후, presentation을 해야 하는데 앞이 캄캄했다. 왜냐하면, 나는 솔직히 토픽도, 학생들간 토론 내용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우리 조원들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못한 채, 내가 마지막에 마무리를 하는 식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기로 정해졌다. (조별 토론에서 별 의견을 내지 못한 내게 주어진 부분이 ‘요약’이였다.) presentation이 시작되었지만, 다른 조의 presentation 내용은 물론, 우리 조의 presentation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 순서가 올 때까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냥 캐나다에 온지 얼마 안돼서 아직은 영어를 못 한다고 하고 포기할까?’ 거의 마지막인 우리 조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막 온 학생들은 능숙한 표현이나 발음은 아닐지라도 뭔가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누구 하나 영어를 못한다고 excuse를 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미치겠다…..’ 어느 새, 우리팀 차례가 오고, 우리조의 두 번째 학생이 말하기 시작하자, 그 순간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재빠르게 수첩에 몇 가지 관련된 단어를 쓰고 나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휴~’ 나름 presentation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영어가 부족한 학생이 이공계 분야가 아닌 MBA 프로그램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Finance와 (미시) 경제학 외에는, 계량(숫자)이나 그래프보다 거의 verbal (written포함)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숙제를 하기 위해서는 거의 다 조별 토론이 요구되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설명을 들은 내용을 각자 정리해서 리포트를 쓰게 되는데, 잘 알아듣고 쓰더라도 문장력이 부족한 나의 리포트는 다른 학생들 보다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Finance와 Microeconomics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었고, 같이 공부하는 조원들의 점수에도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다.)

MBA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심각했던 사건은 ‘MIS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경영정보학)’ 시험에서 발생했다. 다른 시험에서는 2시간 동안 팔이 떨어져라 영문 답안을 써야 하지만, 이 과목 교수는 절대 3페이지 이상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만약 초과하면, 심각한 감점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Operations management와 함께, 내가 한국에서 일해온 전문 분야였기에, 영어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틀림없이 훌륭한 점수를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시험이 시작되자, 나는 고심하기 시작했다. 단 3 page를 쓰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요약에 요약을 해도, 중요한 말을 다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교탁에 놓여진 얇은 노트를 몇 권씩 가져가면서 팔이 떨어져라 쓰고 있었다. ‘제들은 뭐야? 교수 말을 완전 x무시 하네…?’ 난 어떡하든 점수를 잃을 수 없지…. 더 요약해서 3 page에 다 써보자….’

중간고사가 끝나고 점수 결과를 받았다. ‘Fail.’ MBA 학위 규정상, 전체 평균 B이상 유지를 못 하거나, 두 과목 이상 B미만이면, 탈락….. 교수를 찾아갔다. 왜 내가 Fail이냐고 따졌다. 교수가 내 답안지를 꺼내자 마자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쓴 게 없단다. 어이가 없었다. 세 페이지 초과면 심각한 감점이라며~? 교수 왈, ‘당신은 내 말을 완전히 잘 못 들었군. 한 문제당 3장을 초과하지 말라고 했지만, 문제 수가 15문제 정도 되니까 답을 45장 정도 쓰되, 그 이상은 쓰지 않아야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은 있다고 했나? 결국, 다음 수업 시간 중 강의에 관련된 학생들의 work experience case를 물을 테니, 모든 학생들이 크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case를 준비해서 수업에 기여하면, 수업 중 contribution 점수를 확실히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수업 중, 교수의 질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들었다. 즉석 해서 (사실은 나만 미리 준비했겠지만) 내 사례를 설명했다. 1점이 아쉬운 나는, 할 말이 좀 많았다. 시간이 길어져서 발언 중에 수업이 종료되었지만, 교수는 내 사례를 학생들이 계속 듣도록 하면서, 수업을 끝내지 않았다. 지겨운 내 설명이 끝나자, 교수는 훌륭한 예를 들었다고 칭찬하고, 학생들은 한 숨을 쉬면서, 수업이 늦게 끝나 점심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해 불만이 가득찬 얼굴로 교실을 떠났다. 결국, 그 과목은 B로 무사히 합격을 했고, 그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민자의 설움, 영어!!!

이민이나 유학을 와서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누구나 겪는 것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인종적인 차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어적인 문제로 사소한 차별 대우를 받은 것은 있는 것 같다. Tim Horton에서 Chili를 주문한 적이 있다. ‘Chili soup, please. What? Sorry, we don’t have chili SOUP. No, you have it! I have had it many times, here!’ ‘Sorry but, we have NEVER, EVER served chili SOUP here’ 긴 줄이 서있는데도, 젊은 여직원은 묘하게 기분 나쁜 표정으로 히죽거리면서, 어린아이에게 말하듯이, 외국인에게 배려하듯이, 시간을 끌면서 천천히 또박또박 내게 말을 해주자, 기분이 더 나빠졌다. 내가 손가락으로 직원 뒤에 있는 가격표를 가리키며, 칠리 숲을 달라고 얘기했지만, 그 직원은 재미있다는 듯이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 때, 다른 여직원이 그 직원의 뒤를 바쁘게 지나가면서 그녀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Chili! You already got it, didn’t you’ (너 다 알아 들었잖아)? 그제서야 그 여직원 이제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내숭을 떨며 말했다. ‘Oh, chili! Yes, we have it. Chili는 soup이 아니란다. 나중에 보니, 그 직원의 말이 맞긴 맞는 소리지만, 정말 씁쓸했다. 아직은 영어가 서툰 내 첫째 딸이 옆에서 나를 슬프게 지켜보고 있는데….

이민이나 유학을 와서, 가장 힘든 것은 언어적 문제이다. 특히, 나와 비슷하게 중년의 나이에 박사과정 유학을 온 교민의 말이 생각난다. ‘캐나다에 랜딩(landing, 도착)하자, 내가 벙어리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귀머거리구나 했고, 마침내 내가 봉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캐네디언이 쓴 글은 못 읽겠더라 구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교민들을 보면 훌륭하고 존경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영어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이 들어 늦게 온 이민자들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캐네디언들이 하는 말을 편안한 마음으로 듣고 즐기면 좋을 것 같다.

다음 칼럼에는 어린 나이에 캐나다에 온 자녀들의 영어 적응에 대해서 생각해 볼 예정이다.

글: 송시혁 (송학원 원장)

빅토리아투데이 2013년 10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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