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방문

<송선생 교육칼럼 92> 세 번째 방문

글/사진 제공: 송시혁 <송학원 원장, seahsong@gmail.com>

글/사진 제공: 송시혁 (송학원 원장)

 

며칠 전에 필자가 가르쳤던 제자가 찾아왔다. 2년 전에도 왔었고, 6년 전에도 왔었으니까, 빅토리아를 떠난 후, 이 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상당히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필자가 잔소리를 많이 했던 학생이었는데, Quebec의 McGill 대학에 간지 1년 만에 필자를 만나러 왔다. 대학에서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나름 자랑하러 온 것인가 하고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학교를 그만두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더 이상 대학을 다니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학업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라는 상투적인 말 밖에 할 수 없었고, 그가 이미 결심한 생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후, 결국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밴쿠버에 나가서 레스토랑에서 서빙(serving)을 했다. 하지만, 그 정도 의지를 가지고 밑바닥부터의 삶을 견디기에는, 아직은 경험 없는 젊은 인생이었다. 같은 나이또래 대학생들이 즐겁게 식사를 즐기는 동안, 최저임금을 받는, 고된 주방의 설거지 일이나, 그나마 조금 나은 웨이터 일이 그에게 희망이 되기에는, 그가 너무 쉬운 인생만을 살아왔던 것 같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대학에 이미 자퇴를 통보한 상태라, 절망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직접 학교로 가서, 마지막 학기 담당교수와 학과 교수를 만나, 통사정을 했다. 하지만, 역시 일단 자퇴 처리를 한 터라, 휴학한 학생처럼 쉽게 복학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 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복학을 했고,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낙제 또는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과목들은 메우고, 상위 학년공부를 나름 열심히 해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은 학교 공부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특히, 몬트리올에서는 불어를 잘 하지 못하면 취업이 불가능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는 토론토로 옮겨서 취업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성공과 실패잠시 마음을 정리하고자 빅토리아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바로 그 때, 필자를 찾아와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럴 때 구체적인 조언은 쉽지 않다.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거 아냐? 계속 두드려봐….졸업한지 얼마나 됐다고…’라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필자의 말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며칠 동안 생각해보니 다시 토론토로 돌아가서, 무조건 레쥬메(resume)를 가지고, 회사의 human resource(인력관리) 담당자를 직접 방문이라도 해 볼 겁니다.’라는 말과 함께, 꼭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빅토리아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전 그는 빅토리아에 왔다는 전화가 왔다. 이번엔 달랐다. 반듯하게 차려 입고, 머리에 힘도 주고, 안경도 벗고… 카리스마 있는 당당한 청년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선생님, 저 취업했어요!’

2년 전, 토론토로 돌아갔을 때, 그의 결심은 허무하게 무너졌다고 한다. 어렵게 방문하여 인사 담당자를 만나봤자, 1분도 이야기를 나누긴 힘들었다. 절차대로 인터넷을 통해서 지원하면 검토하겠다는 말 뿐이었다. 할 수 없이 파트타임으로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다가, 국제 식품 박람회에 참여하는 한국 회사에서 통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진지하게 일하는 그의 자세를 본 캐나다 식품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 보라고 했다.

그 회사의 파트타임 일(position)은 말 그대로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이제 막 비지니스를 시작한 회사의 사무실에 널려있는 빈 박스도 치우고 복사도 하고… 등. 하지만, 아직 조직을 갖추지 못한 신규회사라 회의가 잦았고, 그런 회의가 자기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하게 되면, 임의로 참여할 수도 있었다.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일자리를 찾기 위해 무조건 찾아가서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당하던 쓰라린 경험을 생각하니, 그에게는 모든 회의들이 그냥 참관만하고 넘길 수 있는 회의가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을 하고,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이면, 어렵고 힘든 일이더라도 자청하여 그 일을 맡았다고 한다.

미국식약청 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규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직접 FDA 기관에 문의도 하면서 미국에 무역과 유통을 성공시키면서, 그 회사가 미국 진출을 하는 일도 잘 처리했을 때 즈음, 풀타임 잡 (Full-time Job)을 제안(offer)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 때 전공한 Finance 지식을 토대로, 그 회사의 재정은 물론, 유통회사인 만큼 오퍼레이션(operation) 업무도 담당하면서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보상은 빨랐다. 6개월 만에 급여도 획기적으로 오르고, 매니저로 승진했다. 또 그 후에 6개월 만에 다시 급여가 올라서, 풀타임으로 일한 지 1년 만에 급여가 거의 두 배가 됐다. 그리고 그 회사도 늦어도 2년 내 IPO(Initial Public Offering)에 주식을 상장할 예정이다.

‘처음부터 큰 잡(Job)을 구하려고만 하지 말고 작은 job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필자는 그 친구에 준 조언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지만, 그 친구가 성공할 거라는 은근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필자가 사주려고 한 식사비는, 젊은 청년의 힘과 강압으로 낼 수가 없었다. ‘내가 오늘은 빚을 졌으니, 다음에는 꼭 다시 찾아와서 내 밥을 얻어먹어야 한다……하하하하…’

성공과 실패 2‘성공하려면, 실패란 대가(代價)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는 지난 두 번의 방문은 실패와 실망을 위로 받기 위해 찾아왔지만, 세 번째 방문은 걱정하는 지인에게 성공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었지만, 왠지 제자의 젊은 패기가 부럽고 미더웠다. 그에게 실패란 성공을 위해서 극복해야 하는 정해진 절차처럼…

그리고,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성공한 그를 생각하면, 어떤 확신이 든다. 몇 년 후, 그의 방문에서 어떤 희망을 우리가 그에게서 들을 것인가를…

최근, 미국의 아이비리그(Ivy League)급 대학들이 합격자를 발표했다. 기대를 많이 했던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필자의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필자의 경우도, 첫 째 딸이 고등학교 때 누구 못지 않게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잘했지만, 대학에 입학할 때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지 못해서 슬퍼하던 때가 생생하다.

그 뿐만 아니라, 대학에 가서도 코업잡(co-op job)을 잡으면서 나름 많은 좌절을 겪었다. 비록 원하는 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반드시, 본인의 분야 업계에서 가장 큰 회사(Big 4)에서 코업을 할 거라고, 대학 1학년 때부터 장담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코업에서는 시간외 근무 수당은 물론,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코업도 원하는 회사가 아닌, 도시와 떨어진 외진 지역에 있는 회사에라도 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만 했다. 세번째 코업 리쿠르트(recruit)때에는 원하는 회사에 인터뷰도 하고 기대할 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지만 또 실패하고, 두 번째 코업을 한 회사에서 다시 일을 했다. 그리고는,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원하는 회사에, 코업이 아닌, 정식 직원으로 입사를 할 수가 있었다.

필자는 첫 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활력이 넘치고 의지가 분명한 것이 보기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자만심이 센 것을 걱정했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결과가 풀리지 않아,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면서 딸이 많이 겸손해지고, 설사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면서, 이제야 딸에 대한 믿음이 들었다. 꿈이 큰 만큼 좌절도 크지만, 꿈을 꾸는 기쁨을 위해서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Many of life’s failures are those who didn’t know how close they were to success when they gave up.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모른다.)”
– Thomas A. Ed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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