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주 풍광과 토템폴 즐겨 그린 세기의 화가

BC주 풍광과 토템폴 즐겨 그린 세기의 화가

제임스 베이 Government St에 있는 에밀리 카의 생가. BC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밴쿠버섬 10배 즐기기 17> EMILY CARR & CARR HOUSE

이너하버에서 주의사당을 오른쪽으로 끼고 Government St을 따라 남쪽으로 7~8분쯤 걸어가면 왼편에 노란색 2층집이 유난히 눈에 띈다. 빅토리아가 낳은 세기의 화가 에밀리 카(Emily Carr)의 생가다. BC주 유적지로 지정돼 있는 이 주택은 에밀리 카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활동하다가 마지막 숨을 거둔 장소이기도 하다.

1864년에 지어진 빅토리안 풍의 이 집 2층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과 직접 만든 도자기,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아랫층에는 캐나다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People’s Gallery”가 있다. 그 뒷편에는 자그마한 매점이 있어 기념품을 살 수도 있다.

20세기 캐나다를 대표하는 화가 에밀리 카는 빅토리아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하면서 그의 일생 대부분을 빅토리아에서 보낸 토박이 화가이자 작가다. 그는 BC주가 캐나다 연방에 편입되고 몇달이 지난 뒤인 1871년 12월13일, 영국 이민자 출신의 중산층 가정에서 리차드 카와 에밀리 손더스의 9남매 중 여덟번째로 태어났다. 1886년 그의 나이 14세에 어머니를 잃은 에밀리는 2년 뒤인 1888년 아버지 리차드와 언니 에디스를 한꺼번에 잃는 연속적인 불행을 겪는다.

훗날 그가 그린 그림에 강한 반항의식이 잠재해 있고 관습적인 결혼이나 모성을 거부하는 등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저항하면서 강한 독립정신을 갖게 된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겪어야 했던 이러한 가족의 불행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어린 시절 빅토리아에는 미술공부를 할만한 체계적인 교육시설이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없었다. 따라서 가르침을 줄 스승을 찾기도 어려워 혼자서 스케치를 즐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가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은 1890년 그의 나이 18세 때 그림공부에 대한 열정을 안고 샌프란시스코디자인학교(San Francisco School of Design)에 등록하면서 부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림공부에 매진하던 에밀리는 결국 학비 등 경제적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2년반만에 아린 가슴을 안은채 귀향길에 오른다. 빅토리아로 돌아 온 그는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아틀리에를 만들고 이곳에서 어린이들에게 그림 지도를 시작한다.

그후 1899년 학문의 깊이를 더할 목적으로 영국에 건너간 에밀리는 런던의 Westminster School of Art에 등록하는 한편 콘월, 부시, 헛트포셔 등 여러 곳의 스투디오에서 5년 동안 스케치 공부를 병행한다.
다시 1910년에는 그 동안 모아놓은 돈을 깡그리 털어 파리로 건너가 콜라로시 아카데미(Academie Colarossi)에서 1년간 더 미술 공부를 한 후 이듬해 1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밴쿠버로 돌아온다. 에밀리는 밴쿠버에서 작품활동을 시도하지만 당시 BC주는 예술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어서 후기인상주의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은 이들에게 외계인 취급을 받아 아무도 작품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고 한다. 1913년 실의에 젖어 빅토리아로 영구 귀향한 에밀리는그후 10여년 동안이나 화필을 꺾고 일체의 작품활동에서 손을 뗀 채 개와 채소를 기르고 도자기를 구우며 하숙을 치는 것을 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화가로서의 그의 인생에 일대 전기가 마련된 것은 1927년 캐나다국립미술관의 초청을 받아 “캐나다 서부해안미술전”에 그의 작품이 출품되면서 부터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그의 작품성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새로운 평가와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된다.

당시 토론토를 중심으로 순수하게 캐나다적인 미술을 그려내기 위해 결성된 로렌 해리스 (Lawren Harris)등 7인회(The Group of Seven) 소속 멤버들과의 만남을 통해 에밀리는 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꽃 피우게 된다. 이때부터 과거 20여년 동안 그의 화폭을 지배하던 원주민 마을과 토템 폴이 사라지고 대신 부드럽고 억제된 색채를 사용한 자연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그에게 예술가적 영혼을 재점화시키고 전폭적인 지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로렌 해리스와 마크 토비(Mark Tobey)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한다. 에밀리는 5년 후 이들로 부터 “현대 미술의 어머니”라는 영예스러운 칭호도 받게 된다.

그가 남긴 수백여점의 작품 중에는 <Totem Poles: Kitseukla(1912)>, <Totem Walk In Sitka(1917)>, <Indian Church(1929)>, <Big Raven(1931)>, <Self Portrait(1938)>  등이 포함돼 있다.

에밀리 카의 1928년 작품 Kitwancool           <사진: wikipedia>

독특한작품 세계

에밀리 카는 전통적인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가 평생 동안 사랑했던 BC주의 자연풍광과 원주민들의 생활 문화, 특히 토템 폴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 1898년 그가 방문한 밴쿠버섬 Ucluelet의 한 미션스쿨과 1908년 알래스카 여행시 그곳 원주민 문화와 생활 양식에서 깊은 감동을 받아 평생 동안 애정을 가지고 이들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BC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세간의 비난과 원주민 문화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멸시 때문에 오랜 세월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인습과의 타협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원주민들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생활양식을 그리워했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와 관습에 동화되지 못하고 고립된 존재로서의 자아인식은 당시 백인들에 의해 무시와 천대를 받던 인디언들과의 동질감과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그의 화풍은 파리에 있는 동안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야수파가 통합된 혁신적인 프랑스 미술을 접하게 되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인상주의적인 표현, 야수파적인 과감한 선의 사용, 굵은 붓터치, 평면화된 원급법 사용, 강렬한 색깔, 단순화된 형태 등을 사용하여 태평양 연안의 독특한 문화와 풍광들을 담은 작품을 그려냈다는 것이 많은 평론가들의 작품평이다.

노년에 접에든 에밀리 카는 1937년 심장발작을 일으키면서 붓을 멀리하고 집필에 전념하게된다. 해리스와 에릭 브라운의 권유에 따라 저널리즘 코스를 밟기도 한 그가 쓴 책들은 주로 자전적 내용을 유머와 통찰로 묘사하고 있는데 원주민과의 만남을 그린 작품 으로 총독이 주는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The Book of Small(1944)>, <The House of All Sorts(1946)>, <Growing Pains(1953)>, <The Heart of Peacock(1966)> 등 여러권의 저서를 남겼다.

동 시대의 여성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쓴 여러 권의 저서와 BC 주 연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원주민 문화를 수백점의 작품들은 밴쿠버 아트갤러리에 206점, 빅토리아 아트갤러리 9점, 카하우스에 18점 등 여러 곳에에 분산 돼 상시 전시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학교만해도 밴쿠버에 에밀리 카 미술디자인 학원, 에밀리 카 초등학교가 있고 오타와에는 에밀리 카 중학교가, 런던(온타리오)에는 에밀리 카 공립학교 등이 있다.

여러 차례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마에 고통 당하던 에밀리 카는 1945년 3월2일 74세를 일기로 제임스베이의 자택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페어필드 로드의 Ross Bay Cemetery에 있는 카 패밀리의 가족묘지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의 묘비석에는 “에밀리 카, 1871~1945, 화가이자 작가”라는 소박한 글이 새겨져 있다.

빅토리아투데이 2008년 2월29일

Copyrights ⓒ 빅토리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