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가 그립다

<문학회 수필> 아날로그가 그립다

엘리샤 리 수필가, 화가/빅토리아문학회 회원

엘리샤 리
수필가/화가, 빅토리아문학회 회원

1월1일 종일 카톡이 ‘톡톡’ 울린다.

대부분 ‘해피 뉴 이어’라는 글과 함께 누군가가 미리 작성해 놓은 사진이나 그림들이 곁들여진다. 오랜만에 이름을 대하는 반가운 분도 있어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저녁 무렵 한 보톡 전화를 받게 됐다. 반갑게 제법 긴 대화를 하고 끊으려는데 그 분이 하는 말이 자기가 다른 사람한테는 다 카톡으로만 안부하고 직접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는 사람은 나만 이라고 한다. 허허 웃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목소리 들려주기도 이렇게 힘든 세상에 사는구나 싶어 서글퍼진다.

언제부터 우리는 전화기만 들여다 보는 세상을 만나게 됐다. 우리 샵에 샌드위치를 사러오는 사람들 중에도 주문을 해 놓고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 텍스트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 주위에도 컴퓨터를 잘 사용 못하거나 핸드폰에 카톡이 없는 사람만 빼고는 거의 전화 할 일이 없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컴퓨터나 전화기로 하고 있다. 이 기기들을 사용하면서 전화로 수다 떨면서 시시 껄껄하던 일은 아주 먼 옛 일이 되어 버렸다.

시간 절약이 되어서 좋기는 한데 어쩐지 나와 친구나 가족의 감정까지도 기계가 가져가 버린 느낌이라 그리 즐겁지 만은 않다. 어제는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가 역시 ‘해피 뉴이어’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바로 친구에게 보톡 전화를 넣었다. 방금 메시지를 받았으니 의례 친구가 덥석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약간 기분이 상한 내가 “너 애자 맞아”라며 확인요청을 했더니 자기가 감기가 걸려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제기랄, 쉰 목소리면 어떻고 째지는 목소리면 어때서 전화를 안 받나? 언제부터 지가 목소리 다듬고 살았담. 이미 우리는 목소리를 감추는 습관이 되어 버렸구나 싶어 여간 슬프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11월 중순부터 성탄카드를 백 오십 여장 써 붙여왔는데 작년부터는 몇 군데 빼고는 거의 중단했다. 내가 바쁘기도 하지만 카드 받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벽에 천정에 줄을 매어 집 안 가득 카드를 펼쳐놓고 보는 재미도 상당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친필로 부쳐오는 편지는 아예 눈 씻고 볼래야 없다. 한창 연애를 할 때 집배원을 기다리며 편지 한 장 손에 들어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나? 서 너장의 긴 편지를 받았을 때는 읽고 또 읽고 오랫동안 편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만으로도 나는 한없이 행복했다. 편지 속에는 글쓴이의 따스한 체온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작가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와 인화하고 현상하는 짜릿함이 그리 좋았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부터는 사진의 매력을 다 잃고 말았다고 한탄 한다. 그런가 하면 레코드판 턴테이블 앰프를 다시 구입해서 아날로그의 감성에 젖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이렇게 달려가다가는 어디쯤에서 멈춰질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더 무슨 기막힌 것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그것들을 사용하려면 불철주야 공부하면서 따라가야 하니 숨이 턱에 찬다.

나의 정서는 아직도 아날로그를 많이 그리워하는데 세상은 온통 디지털 세상이다.
이놈의 디지털 세상 때문에 목소리듣기 친필 편지받기등 이래저래 정스러운 것은 다 잃어간다. 다행히 내 생애에 아날로그 세상을 일찍 맛보았다는 것만으로 고마워 해야 할 판이다.

그리운 아날로그의 날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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