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과 존칭

<문학회 수필> 호칭과 존칭

한상영
소설가,평론가/빅토리아문학회 회원

얼마전 모임에서의 일이다.
은퇴나이에 가까우면 어느 틈엔가 어떤 모임을 가도 항상 상석에 있어야하는 처지가 된다. 모인 면면이 나 보다는 적은 나이이지만 다들 40 50대 성인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으로 곤란한 일은 상대방을 어떻게 부를까하는 호칭 문제다. 알다시피 서양 사람들은 높고 낮고 가깝고 멀고 간에 이름을 부른다. 만나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호칭에 예민하고 까다롭다. 그래서 사용한 용어가 Mr. 였다. 말하자면 Mr. 박, 내깐에는 최대한 존중해서 부른 호칭이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이 되돌아 왔다. 기분이 나빴단다. 자기를 굉장히 깔보고 무시했단다.

Mr. 라는 호칭은 이곳 서양사람들이 상대방을 정중히 대할때 쓰는데 왜 그는 깔보는 말로 인식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영어 Mr. 는 우리말로 .. 씨 나 … 님, 아니면 … 군 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도 정중하게 대해야 할때 …씨 라고 쓴다. 나이 차이 별로 안나는 사이, 맨이름으로 부르기가 거북한 사이일 때 무난한 호칭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나어린 상대한테는 … 군 이라고 써야 정상이지 그런 경우까지 …씨 라고 하면 오히려 조롱하는 말로 들리기 쉽다.

카나다에서 영어로 Mr. …하면 상대가 어느 나라 사람이건 정중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왜 무시당한 느낌이었을까? 아마도 …군, 말하자면 박군 으로 생각하여 스스로 자신을 어린 나이로 격하 시키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인식으로 내 호칭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면 그건 스스로의 문제이지 내 책임이랄 수 없다. 사회적으로 공통된 인식으로 쓰여지는 용어를 어느 개인이 다르게 인식하고 갖는 감정까지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한편으론 어떤 특별한 이유로 기분이 상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보통 한국에서 잡일이나 험한 일을 위해 채용한 일꾼을 부를때 흔히 박씨, 김씨 라고 쓰는 것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런 경우 정식 이름 석자 다 넣어 박영수씨 라고 부르지 않고 성만 따와 박씨 라고 부르는데 그걸 영어로 생각해 Mr. 박 이 되니 본인 스스로 잡일하는 일꾼으로 전락한 기분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이름 석자 다 넣어 Mr. 를 쓰진 않는다. Mr. 영수 박 ? Mr. 박영수 ? 아니다. 그냥 Mr. 박 이다. 이 경우도 그런 인식을 가진건 본인 자신이다. 우리의 모임은 천한 일을 하기위해 누구는 일을 시키고 누구는 그 일을 해야하는 그런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친목을 위해 모였고 모임에 걸맞는 여러 의견들을 나누고 통일하기 위해 모였으며 맡은 직책에 따라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는 모임인 것이다. 그러니 이 경우 그 사람이 스스로를 잡일하는 사람으로 격하시킨 셈일 뿐이다.

반면 여자의 경우는 인식이 전혀 다르다.
이민오고 얼마 안 되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참석한 여자에게 쓴 호칭이 무엄?하게도 ‘ 아주머니 ‘ 였다. 당시는 몰랐는데 그 여자는 당황했고 어처구니 없어했고 불쾌했단다. 그리고 알려준 것이 Mrs. 란 단어였다.

Mrs. 박이라고 불러야만 한단다. 영어로 Mr. 와 Mrs.는 품격이 다른 호칭일 수가 없다. 격이 같은 용어인데 왜 남자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고 여자들에게는 기대의 대상인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말로 옮기면 ‘ 아저씨 ‘ 이고 ‘ 아주머니 ‘ 로 아저씨는 결혼한 어른 남자, 아주머니는 결혼한 어른 여자를 통칭하는 순수한 우리 말이다. 그 말은 하대하는 말도 아니고 아주 높여서 부르는 말도 아닌 불리는 사람의 인격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호칭 대명사이다. 내가 어렸을 당시 아저씨, 아주머니 는 정겹고 순박한 용어였는데 지금은 왜 해당되는 모두에게 기피하는 용어가 되어 버렸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호칭을 보면 주로 그 사람의 직책에 님 자를 쓴다. 사장님, 청장님, 이사장님,사령관님, 교수님, 목사님, 주지스님, 회장님 등등… 참 자연스런 호칭인 것 같다. 회사 사장님도 처음에는 회사가 크고 작고 간에 모두 사장님이었다. 그걸 빗대 지난 날 이런 말이 돌아다녔다. 명동에서 김사장님 하고 부르면 열에 아홉은 돌아 보았다고.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진 후, 자회사를 2개이상 거느린 규모가 큰 회사의 사장을 똑같이 사장님이라 하기엔 뭔가 예가 아닌듯해서 생각해 낸 것이 회장님이있을 것이다. 그런데 손꼽히는 재벌기업들은 더 차별을 두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에 와서는 최고경영자라는 뜻의 영어 CEO라는 말을 쓰는 것을 종종 본다.

직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직책이 호칭이 되어 좋은데 직책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부를 것인가. 평사원님? 사환님? 실무자님? 경비님? 계약직님? 평신도님? 완전히 사람 무시하는 호칭일 것이다. 또 그 사람이 현재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경우는 어떻게 부를 것인가, 처음 만나 동행할 때 서로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 서양이나 동양이나 사람들이 처음 만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직책을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된다. 과장이세요? 부장이세요? 무슨 일을 하나요? 총무인가요? 회장인가요? 아무래도 예가 아니다.

기실 선생님이란 호칭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대학 등등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이많은 사람에게 붙이던 호칭이다. 학교에서 동년배나 나이적은 사람에겐 그저 박선생 하고 부르던 그 호칭이 학교를 벗어나 나이에 상관없이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이란 호칭의 인플리에션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최고학부라는 자존심에 그들과 다른 호칭을 원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들이 원했거나 아니거나 선생님대신 교수님이 되었다

불편하고 거북하고 불쾌할텐데도 그런 미묘한 감정을 숨기면서까지 이런 복잡한 호칭을 쓰지 않을 수 밖에 없고 또 쓰려고 애쓰는 이유는 존경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존칭을 쓰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까 은근히 걱정이 되거나 불이익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잘못하는 것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격이 높고 신분이 높으며 유식하고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전시대적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거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런 불편과 불만을 감수하는 것이리라.

존경이라는 용어는 사실 고통과 노력의 긴시간, 그리고 겸손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보내는 존칭은 마음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감히 마음 속에 어떤 복선을 깔 수가 없다.
옛날 계급의식이 투철했던 양반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직책이나 격식에 따라 쓰던 호칭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이렇게 복잡해 진 것이다.
그런데 평등사회가 된 지금 그 복잡한 계급적 호칭을 계층과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왜 따라 해야 하는가

그래서 생각해 본다
특정 조직안에서야 그 조직에 맞는 호칭을 써야 하겠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이름을 알 경우 영수씨나 박영수씨, 나이가 적거나 어리면 영수군이나 영숙양, 막역한 사이라면 그저 영수 나 영숙 이라고 쓰는 것이 어떤가 하고.

이렇게 제안하면 아마도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주 순진한 사람으로 치부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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